메이저급 월드클래스 자리매김 하려면 팬들의 관심 절실해

꽃샘추위가 맹위를 떨쳤던 지난 4월13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 홀은 로드FC(정문홍 대표)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이번 대회는 역대 최강의 대진이라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대회전부터 술렁였다. 이 같은 소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대회는 월드클래스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수준 높은 경기가 이어졌다. 


 

올해 대회는 우여곡절 가운데 열렸다. 북한의 핵위협에 따른 긴장감 탓에 선수들이 입국을 꺼렸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선수들은 예정된 날짜에 도착하지 않기도 했다. 이러자 주최측은 선수들 설득에 나섰고 결국 요아킴 한센을 비롯한 7명의 참가선수들은 전원 한국 땅을 밟았다. 

경기 대진은 종합 격투기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KBS 인기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며 ‘감성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은 서두원 선수와 원조 ‘좀비 파이터’, ‘헬보이’ 요아킴 한센과의 매치업은 최고의 빅매치로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데니스 강을 꺽은 국내 유일의 파이터인 위승배가 카메룬 출신의 강자 라모 티에리 소쿠주와 맞붙었는가 하면 일본 최강 쿠메 다카스케와 ‘코리안 불도저’ 남의철과 격돌했다. 

터키 출신의 무랏 카잔도 관심을 모았다. 터키의 국민적 스포츠 스타인 그는 이형석과의 대결에 앞서 ‘이형석의 니킥이 일품’이라고 추켜세우면서도 “난 킥복싱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모두 레슬링이 뛰어나다. 그가 그라운드를 원한다면 그라운드에서 상대해 줄 것이다. 난 준비가 돼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기내용은 명불허전이었다. 제1경기는 바로 무랏 카잔과 이형석의 경기였다. 이 경기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무랏 카잔이 55초만에 초크승을 거둔 것이다. 경기 전 드러냈던 강한 자신감이 허풍이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제2경기로 열린 차정환과 루이스 라모스의 경기는 3라운드까지 가는 열띤 공방이 펼쳐졌다. 결과는 무승부. 제3경기였던 손혜석과 미오와맨의 경기는 손혜석 선수가 3라운드 55초만에 펀치 TKO승을 거뒀다. 

매경기 월드 클래스급이었던 11회 로드FC

제4경기부터 분위기는 무르익기 시작했다. 위승배와 라모 티에리 소쿠주가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위성배는 2011년 7월 열렸던 로드FC 대회에서 난타전 끝에 ‘슈퍼코리안’ 데니스 강을 TKO로 물리쳤다. 데니스 강을 이긴 한국 선수는 위승배가 유일했다. 상대인 라모 티에리 소쿠주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히카르도 아로나,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 등 세계적인 강자들을 물리친 경험이 있었다. 비록 UFC에서 그라운드의 약점을 보이며 퇴출됐지만 저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더구나 위승배는 데니스 강과의 경기를 끝으로 2년간 링을 떠나 있었기에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링에 오른 위승배는 전혀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쿠주는 날카로운 타격으로 위승배에게 데미지를 입혔다. 간간히 위력적인 어퍼컷을 날렸고 하이킥과 로킥으로 위승배의 중심을 흔들었다. 브라질리언 킥이나 뒤차기 기술도 구사했다. 관중들은 소쿠주의 킥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위승배는 소쿠주의 로킥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스텝이 죽어 반격의 기회를 좀처럼 잡지 못했다. 결국 그는 0대 3으로 판정패했다. 소쿠주의 로킥 공격에 KO되지 않고 판정으로 경기를 마친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서두원과 요아킴 한센이 맞붙은 제5경기는 사실상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었다. 서두원은 로드FC 원년 멤버로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로드FC 케이지에 올랐던 최고스타였다. 스타성에 관한 한 요아킴 한센 역시 뒤지지 않았다. 한센은 일본 종합격투기의 전성기로 불리던 프라이드 시절부터 경량급의 강자로 군림해왔다. 그는 멈추지 않은 공격력과 투지로 ‘헬보이’, ‘좀비’라는 닉네임을 얻기까지 했다. 

두 선수는 경기 초반 신중하게 서로를 탐색했다. 한센은 로킥과 미들킥을 날렸다. 이에 맞서  서두원은 펀치로 거리를 잡아 나갔고 간간히 기습적인 앞차기로 한센의 턱을 노리기도 했다. 먼저 일격을 가한 쪽은 서두원이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한센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한센은 데미지를 입어 휘청거렸고 이어진 서두원의 테이크다운에 상위포지션을 내줬다. 서두원은 한센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그는 파운딩을 치는 한편 일어나려는 한센의 목을 잡고 길로틴 초크를 시도했다. 그 순간 1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버저가 울렸다. 

한센은 2라운드에서 반격을 노렸다. 한센은 타격 대신 그라운드 기술로 서두원을 압박하다가 암트라이앵글 초크 기술로 서두원의 목을 졸랐다. 서두원은 압박을 버티려 했지만 빠져나오지 못했고, 결국 주심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서두원이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면 로드FC 최초로 5연승 고지에 오를 수 있었지만 한센의 벽에 막히고 말았다. 

월드클래스 매치, 연장접전으로 화룡점정

위승배·서두원 선수가 잇달아 패배하면서 경기장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다. 마지막 제6경기에 나서는 남의철은 국내선수의 자존심을 세워야 하는 부담을 져야했다. 상대는 일본의 쿠메 다카스케로 최근 9연승을 달리며 UFC 진출 제의를 받은 강자다. 

두 선수는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남의철이 먼저 펀치를 날렸고 쿠메는 하이킥으로 응수했다. 이후 두 선수는 소나기 펀치를 주고 받았다. 경기 초반 분위기는 쿠메가 장악했다. 쿠메는 하단 태클 기술을 걸어 남의철을 넘어뜨렸다. 남의철은 쿠메의 강력한 그라운드 압박에 밀려 고전했다. 

남의철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펀치 러시로 쿠메의 안면을 가격하면서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그는 계속해서 파운딩 펀치를 던지며 점수를 따냈다. 두 선수는 3라운드까지 가는 공방전을 벌였지만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결국 경기는 연장라운드로 돌입했다. 

연장 초반 쿠메는 테이크다운 기술을 시도했다. 하지만 서로 맞잡은 채 타이밍을 노리던 남의철이 쿠메의 허를 찔러 테이크다운을 성공시켰다. 이 기술은 승리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포인트로 작용해 남의철은 판정승을 거뒀다. 

남의철은 이 승리로 로드FC 라이트급 초대 챔피언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그는 경기 후 “친구들이 챔피언 먹으면 UFC 가야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작은 힘이지만 로드FC를 UFC처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로드FC를 최고의 대회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회 운영 합격점, 판정시비는 유감

로드FC 제11회 대회는 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요아킴 한센, 티에리 소쿠주, 무랏 카잔, 쿠메 다카스케 등 세계적인 선수들은 한 차원 높은 경기력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들과 맞선 국내 선수들은 좋은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과시했다. 

대회규모와 무대연출도 수준급이었다. 이번 대회는 로드FC가 아시아를 넘어 월드클래스로 진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하지만 심판판정 논란은 옥의 티였다. 특히 남의철과 쿠메 다카스케가 맞붙은 제6경기가 입길에 오르내렸다. 경기를 지켜본 팬들은 심판의 스탠딩 선언 시점이 적절하지 않았다, 판정에 지나치게 홈 어드벤티지가 적용됐다고 강력히 항의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당시 경기의 주심이었던 장덕영 로드FC 심판위원장이 격투기 커뮤니티에 공식 입장을 표명해 진화에 나섰다. 장 위원장은 공식 입장에서 “(남의철과 같이 수련한) 내가 이 경기에 주심으로 케이지 위에 섰던 것부터가 실수였던 것 같다”고 한 뒤 “(남의철이) 케이지를 몇 차례 잡은 것과 연장에서 스탠딩선언을 한 것에 대해서 해명을 하진 않겠다. 모든 것이 다 나의 불찰이고 나의 실수다”라며 판정에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정문홍 로드FC 대표도 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 대표는 한 격투기 전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고 본다”면서 “남의철이 팬들과 대회사에서 원한다면 재경기를 한다고 했으니 나 역시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재경기 성사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 대표는 이어 팬들의 지나친 비난이 자칫 로드FC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수위가 지나치게 높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말한 그는 “비난이 심할 경우 대회 관계자나 선수들 등 관계된 모든 사람들의 힘이 빠지기 마련이다. 또한 정작 주목을 받아야 할 선수들은 묻혀버린다”며 비난 자제를 당부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로드FC 챔피언십 대회는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격투기 대회로서 위상을 확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정상 단체라는 느낌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외국에서의 관심도 뜨거웠다. 해외 매체들이 이번 대회를 중요하게 다뤘고, 에이전트들도 활발히 움직였다. 하지만 정 대표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기세다. 정 대표는 “아직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지금까지 달려오며 불가능을 극복해 가능한 경험이 있기에 자신 있다”며 “올해 내 메이저 대회의 느낌을 확실히 굳힐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제12회 대회는 6월22일 원주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지훈-노지 류타, 이길우-송민종의 밴텀급 토너먼트 결승 대진은 이미 확정됐다. 11회 대회에서 논란이 됐던 남의철-쿠메 다카스케의 재대결도 추진 중이다. 이 외에도 뛰어난 경기력을 갖춘 해외 유명선수들을 섭외할 계획이다. 

로드FC의 콘텐츠는 국내 시장을 훌쩍 뛰어 넘어 월드클래스로 진화 중이다. 대회를 거듭할수록 대회 규모와 진행, 이벤트와 볼거리 등 관련 콘텐츠들의 퀄리티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건 팬층 확대다. 좀처럼 마니아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팬들의 저변이 빠른 속도로 확대될 때 로드FC는 진정한 메이저급 월드클래스 대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11회 로드FC는 팬들의 관심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의미 있는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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