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한 달 만에 6명 낙마, 박 대통령 고심 깊을 듯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넘어섰다. 정부는 대통령 혼자서 운영하는 조직이 아니다. 각 부처의 장차관은 물론 조직의 수장들을 중심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만이 비로소 거대한 대한민국이 움직인다. 그러나 출범 한 달이 넘도록 새 정부의 인사와 관련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나마 정홍원 국무총리 정도가 큰 잡음 없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고 정상적인 업무를 보고 있는 지경이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의 ‘너무 강한 리더십’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 본격 행보시작

지난 3월22일 정홍원 국무총리는 임시국무회의서 정부조직개편안이 의결된 가운데 “출범이 늦었지만 여야 합의로 처리된데 다행으로 생각 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그간 관심을 보내준 국민들과 법을 통과시켜준 국회에 감사드린다”며 “국정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된 만큼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통해 국민의 삶을 보살피고 국민행복 시대를 실현하는데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신설되는 부처는 장관이 임명되기 전이라도 조직정비 및 인력배치 등 업무 추진기반을 조속히 마련해 장관이 임명되는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조직이 개편된 부처는 업무 인수인계, 인력이관, 예산이체, 기록물 이관 등 필요한 후속조치를 서둘러서 행정의 공백이 없도록 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 총리는 “조직안정과 함께 서민생활, 국민안전 등 국정과제 및 현안 관리에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챙겨달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오후 8시 임시국무회의를 열고 정부조직법 등 41개 개정법률 공포안, 48개 부처직제, 30개 관련 법률 시행령 등 모두 119개 법령을 심의, 의결했다. 정부 출범 26일만이다.

한편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3월14일 서해 연평도를 방문해 “북한 도발이 있을 경우 10배의 타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당부한 것에 대해 ‘특대형 도발’이라고 비난하며 “첫 벌초 대상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3월16일 논평에서 정 총리의 발언에 대해 “백두산천출위인(김정은)의 연이은 현지시찰과 멸적의 불벼락 선언에 넋을 잃은 자들이 함부로 혓바닥을 놀리며 목숨 건 도박에 나선 것”이라며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언한 특대형 도발로서 결코 스쳐 지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진짜 전쟁 맛, 불 맛을 모르는 해병대 나부랭이와 괴뢰법조계와 민간회사를 오가며 돈벌이나 해먹던 정홍원 따위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입질하는 것을 보면, 얼빠진 자들의 발악적 추태가 분명하다”며 “정홍원, 이상훈(정 총리를 수행했던 해병대 부사령관)과 같은 반역자들은 다가올 조국통일대전에서 우리의 첫 번째 벌초대상으로 지정됐음을 숨기지 않는다”고 위협했다.

앞서 정 총리는 이날 북한군의 진지가 내려다보이는 해병대 연평부대 관측초소(OP)에서 현황 보고를 받은 뒤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다. 정 총리는 “결국 화력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 경제력의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 도발할 경우 10배의 타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며 힘의 우위에 입각한 대응을 강조했다. 이에 이 부사령관은 “김정은이 최근 북한 쪽 무도, 장교도를 시찰하고 갔는데, 다시는 못 오게 해야 한다”며 연평부대원들에게 각별한 대비태세를 주문했다.

‘대통령의 사람들’ 줄줄이 낙마

정부인선과 관련한 후폭풍이 박근혜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3월17일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처리 합의를 계기로 국정운영 정상화에 강력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바로 다음날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자진사퇴한데 이어 3월21일 김학의 법무차관도 불미스러운 성추문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아 자진사퇴의 길을 걸었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3월21일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시작된 대통령 업무보고는 다소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분위기였다. 박 대통령은 업무보고에서 노인빈곤의 타파와 기초연금제 도입,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의 100% 적용 등 대선공약을 강조하면서 ‘복지’ 의욕을 과시했지만 이날 세인들의 관심은 온통 ‘김학의’로 쏠리며 빛이 바랬다.

청와대로서는 사정당국의 최고위급인 신임 법무차관이 ‘고위층 별장 성접대 스캔들’이라는 ‘엽기적인’ 사건에 휘말린 것 자체로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이날 오전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름이 나온 본인이 대처를 해야할 것”, “청와대에서 그 사람을 옹호해줄 이유도, 비호해줄 이유도 없다”는 입장이 정리된 것도 이런 기류의 일단으로 풀이됐다.

특히 민정라인이 일찍이 관련 첩보를 접수하고도 적절한 검증을 하지못한 것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이 청와대로서는 부담이었다. 계속되어 온 박 대통령의 ‘인선 검증 논란’이 더욱 거세지는 모양새다. 

그런데 청와대는 아무런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있다. 청와대의 고민은 인선과 관련한 파문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대목에 있다.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 전격 사퇴도 그렇다. 야당이 엄청난 공세로 그의 사퇴를 압박한 가운데 새누리당 내에서도 ‘김병관 사퇴론’이 확산될 정도로 청와대조차 궁지로 몰렸던 바 있기 때문이다.

인사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여론이 확산되면 청와대로서도 녹록하지 않은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권 1달 만에 모두 6명 줄사퇴

‘성접대 의혹’에 휩싸였던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끝내 사퇴했다. 나라 살림을 책임질 내각이 잇따른 낙마사태로 얼룩지면서 집권 초 국정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3월11일 취임 14일 만에 박 대통령은 경제부총리을 비롯해 국방부장관 등이 빠진 채 첫 국무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지난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창조경제와 민생 공약을 실천하기도 전에 잦은 인사 사고로 국정이 난맥에 빠진 모습이다. 마치 이빨 빠진 정부의 국정 공백까지 우려되는 양상이다.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 중 중도 하차한 인사는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장관 내정자 등 모두 6명에 달한다.

김용준 전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자녀 병역 의혹 등으로 자진 사퇴했고, 김종훈 전 내정자는 국적문제와 미국중앙정보국(CIA)에서의 자문활동 경력, 재산문제 등이 불거진 가운데 정치권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지연을 비판하며 전격 사퇴했다.

현역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인 황철주 전 내정자는 “주식 백지신탁 제도에 대해 잘못 이해했다”며 자신이 일군 회사와 주주들을 버리고 공직을 수행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학의 전 차관의 경우 ‘고위층 별장 성접대 의혹’이라는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타격이 크다. 청와대가 ‘관련 당사자들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며 선 긋기에 나선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더 큰 문제는 잇단 낙마 사태가 여기서 멈추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고도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 아직까지 임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다. 사전 검증을 소홀히 한 게 잇단 낙마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자연스레 박근혜 대통령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 민생을 적극 챙기며 국정운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나 자고 나면 불거지는 인사 사고에 발목이 잡히는 모양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커녕 ‘인사가 망사(亡事)’라는 야당의 비웃음이 무색할 정도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처리가 늦어지면서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와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은 국회에 제출되지도 않았고, 한만수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의 경우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잡음이 불거진다면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에 대한 비판에 다시금 불이 붙으면서 국정운영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너무 강한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 키우나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정부조직 개편 협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은 단호하다. 원안고수였다. 

지난 3월4일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이것(종합유선방송 미래부 이관)이 빠진 미래창조과학부는 껍데기만 남는 것이며 굳이 미래부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라고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에도 그는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면서 여당 일각에서 제기되던 ‘양보론’을 봉쇄했다. 3월12일의 경우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강경어조에 야당은 크게 반발하고 했다. 

박 대통령과 관계가 나쁘지 않았던 문희상 비대위원장조차 대국민담화에 대해 “오만과 불통의 일방통행”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을 정도다. 그는 13일 “정부조직 개편 지연이 마치 야당이 발목잡기를 하는 듯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며 “적반하장도 유분수고 사돈 남 말하는 형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분위기 탓에 협상은 한발 짝도 나가지 못하는 듯 했다. 쟁점이 ‘SO(종합유선방송) 미래부 이관’ 뿐인데도 묘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새로운 방안이 제시돼도 박 대통령의 직접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협상장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엿보기 힘든 상황이었다. 여야 모두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형국이 만들어지면서 협상은 ‘욕먹지 않기 위해 만나는 면피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여당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강경론이 결국 협상을 교착 상태로 빠뜨린 근본원인”이라며 “자신의 뜻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강한 리더십이 아니라 승자의 여유를 보여주는 포용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북핵위기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방색 재킷을 착용하고, 거수경례를 하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에서 원칙적인 대응이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국가안보실장, 국가정보원장에 군 출신을 배치함으로써 안보우선 체제도 확실하게 구축했다. “도발에는 반드시 응징한다”는 언급도 여러 차례 나왔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인도적 지원을 언급했을 뿐 북핵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핵 포기를 선택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겠다는 프로세스는 있지만 북한의 핵포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우리 정부의 구체적은 전략은 없다는 이야기다. 

가장 큰 책임이 북한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명박정부 대북정책과 달라진 것도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탓에 말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도발 가능성도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 한 중진의원은 “세상은 바뀌었는데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오히려 부친을 닮은 듯한 강한 리더십”이라며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자세 대신 함께 고민하면 더 좋은 해법이 나올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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