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세상 ‘판타지 문화’로 해소
출판가, 영화계 등 상상 속 판타지 세계 인기
꼴보기 싫은 세상, 현실을 떠난 희망찾기가 . 황우석사건, 사학법개정논쟁, 혁신도시 선정 논란 등 세상이 흉흉해서일까? 신화 전설 모헙 판타지 등을 소재로 한 책들과 영화가이 매상을 주도하고 있다.

출판가의 판타지 문학 인기는 대세로 자리 잡는 추세다.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와 ‘나니아 연대기’의 개봉에 맞춰 원작 소설들도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시인인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김정란 교수가 완역해 펴낸 ‘아발론 연대기(전8권)’가 가세했다. 전세계 출판계에 광풍을 몰고 다니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그리스 로마신화’ ‘다 빈치 코드’ ‘반지의 제왕’ 등으로 이어진 신화·판타지의 맥을 이을 기세다. 전 세계 29개 언어로 번역돼 8,500만부 넘게 팔렸으며,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더불어 20세기 판타지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나니아 연대기(원제:The Chronicles of Narnia)’ 출판시장에서 이미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사회·인문서적 NO, 판타지 OK!”
요즘 청소년이나 젊은층의 독서 트렌드는 어떻게 될까. ‘사회·인문·사상서적은 가라, 단순 흥미 아니면 실리다?’
70∼80년대를 지나 90년대 초·중반까지도 시대적 배경 등 동기부여 요소가 겹쳐 흔히 ‘만화책’으로 대별됐던 소년·소녀기를 거쳐 중·고·대학생, 젊은 직장인 등으로 대표되는 청소년이나 청년기에 접어들면 가장 많이 읽고 관심을 가졌던 도서가 바로 ‘인문·사회과학·사상서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독서 트렌드도 이젠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대신 요즘 젊은 신세대나 대학생층의 주류 선호도서는 판타지 소설류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 또한 실속 위주의 자격증·취업정보 도서이다.
한 인터넷뉴스에서 보도한 전북대와 전주대, 전라북도학생회관 도서관의 최근 도서대출 현황을 파악 분석한 결과, 이 같은 현상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전북대의 도서대출 경향은 판타지 소설과 취업 관련 서적으로 뚜렷하게 양분된다. 최근 한 달 동안(11월) 현황만 보더라도 대출 우선순위 목록 1∼20위까지가 모두 환타지 소설류다. 김정률의 퓨전 판타지 ‘다크메이지(북박스)’를 필두로 전동조 장편 환타지 ‘묵향(명상)’, 이광섭의 ‘아독(디앤씨미디어)’, 방수윤 ‘용검전기(북박스)’, 송치현 ‘드래곤 하트(아선미디어)’, 임무성의 신오리엔탈 판타지 ‘황제의 검(중앙 M&B)’ 등 판타지 소설이 상위 리스트를 모두 휩쓸고 있다. 이는 비단 최근 한 달 동안만의 얘기가 아니다. 몇 년간에 걸쳐 판타지 서적 대출이 가장 많다는 관계자의 말에서 분명하고 확실한 트렌드로 읽혀진다.

또다른 세상속에 빠져드는 마력
전북대도서관 관계자는 “이런 현상이 계속돼 다른 수도권 대학(연대, 고대)을 조사해 본 결과, 역시 가장 대출이 많은 도서가 흥미 위주의 판타지 소설류로 조사됐다”며 “그 나머지 일부가 전공 관련 서적이나 취업정보 등을 얻을 수 있는 책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하 팀장은 이와 관련 “그나마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타대학 역시 비슷한 상황. 학생들의 대출 우선순위에 판타지가 가장 많다. 인기도서목록에서 판타지는 아예 빼고 있을 정도다.
서울시대 모 대학의 관계자의 따르면 “사회·기술(컴퓨터 관련) 서적을 다른 대학보다 많이 소장하고 이를 권장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관심이 가장 쏠리는 도서는 역시 판타지로 대출이 가장 많은 상태”라고 밝혔다. 또 초·중·고생을 포함해 일반인들까지 활발히 이용하는 전라북도학생회관 도서관도 흐름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생회관 도서관은 이 때문에 올해부터 아예 학생들 사고력을 향상시켜주기 위해서 판타지 소설의 비중을 줄이고 창작 관련 도서나 역사 도서 쪽으로 도서관 내부 운영 방침을 바꿨을 정도다. “학생들의 경향을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올 연초 계획을 세웠다”며 “도서관 위원회에서 심의해 선정하는 도서구입을 창의성 향상이나 사고력 증진, 역사도서 등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생회관 도서관을 이용하는 일반인들의 경우 도서 선호도는 문학(판타지, 영미소설), 사회과학, 취업 관련 자격증 서적 등 기술도서 순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학생들과 젊은층들의 독서 트랜드가 왜 이런 판타지 소설류에 열광하고 치우쳐서 흐르는 것일까.
도서관 관계자들과 청소년층 스스로의 자체 분석에 따르면 무한대의 인터넷 파급과 온라인상의 게임을 꼽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 외 다른 세상 존재에 대한 동경과 상상, 판타지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속에 빠져드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현실세계 탈출구나 욕구불만의 실현구조가 이 같은 소설류 집착을 통해서 충족되는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김종일 씨(28)는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데 판타지 소설을 읽고 있다. 판타지라고 해서 나쁜 건 아니다. 머리 식히기에 좋고 대리만족도 가능하다”며 “하지만 너무 빠져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상상을 초월한 ‘상상의 세계’
판타지는 태고적의 구술문화에서부터 현재의 판타지문학, 영화, 게임에 이르기까지 변천해왔다. 다매체적인 문화상품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문자 텍스트의 반역(反逆)을 보여주고 있기도 한 판타지문학이 보여주는 상상세계는 인류역사 이전의 태고적인 요소와 첨단기술이 혼합된 신화적 세계상이다. 동양과 서양, 태고적인 것과 최첨단적인 것, 그리고 인문사회적인 것과 자연과학적인 것이 서로 침투하고 교차하면서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가 진행되는 현장이 바로 판타지의 세계인 것이다.
고대신화는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자연적이면서도 초자연적인 혼합적 상상의 세계였다. 그리스ㆍ로마신화, 북구신화, 단군신화 등이 그것이며 기독교의 성서이야기, 종교적인 기적, 토속적인 전설 등 상상적 판타지 세계는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다. 각 민족의 구전동화와 전설이 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슬람세계의 영원한 이야기인 ‘천일야화’와 독일의 ‘그림동화집’에서 인류의 꿈과 소망이 어떻게 상상력을 발동시켰는가를 볼 수 있다. 또 ‘삼국지연의’ ‘서유기’ ‘수호전’ ‘금병매’ ‘봉신연의’ 등 중국 고전은 동양적 판타지를 구현하고 있다.
서양문학사에서 처음으로 ‘환상문학’이라는 말이 나온 것은 19세기로, 프랑스에서 독일작가인 E.T.A.호프만의 작품이 수용된 시기였다. 그의 ‘호두까기 인형’ ‘모래 사나이’ 등의 인물은 환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또 다시 환상이 되는 두 세계의 변환적 경계선상에서 항상 고뇌한다. 19세기적인 환상문학은 괴기성, 부조리, 무시무시함, 경이로움 등으로 계몽주의와 사실주의의 합리성에 저항했다.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논리적인 추리력을 요구하는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소설과 드라큘라 등의 흡혈귀소설에서는 인간의 본능적 충동이 거리낌 없이 표출되며 사회적 금기가 파기된다. 과학적인 해부학과 연금술적인 마술로 인간창조에 도전하는 메리 셀리의 ‘프랑켄슈타인’, 환상 세계로의 여행인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단조롭고 권태로운 일상생활이 유희적으로 공상적 세계가 된다.
20세기에 들어서 환상문학이론가인 토도로프는 환상문학의 죽음을 선언하지만,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에서 20세기적 환상성으로 현대인을 리얼하게 묘사해낸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에서는 살아있는 자와 유령과의 교묘한 정신적 교감이 환상적으로 그려진다. 또 유대전설의 진흙로봇을 소설화한 마이링크의 ‘골렘’이나 쿠빈의 ‘또 다른 세계’ 등 환상문학의 전통은 여전히 건재했다.
내용적으로 통속적인 것에서 고상한 문학까지, 난센스에서 형이상학적 사고의 저변까지, 그리고 어린아이 같은 유희에서 의도적인 사회비평까지를 포괄하는 환상문학은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판타지 문학으로 대전환된다. 그 중심에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자리한다. 조앤 롤링의 마법학교 이야기 ‘해리포터’,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 ‘모모’ 등은 단순한 아동문학을 넘어선 신세대적인 동화이며 청소년 문학이다. 또 브래드베리의 ‘화성연대기’ ‘스타워즈’는 우주탐험 판타지다.


소설, 스크린 타고 하늘로… 하늘로
영화가 소설읽기를 부추긴다. ‘해리 포터’와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같은 영화가 한결같이 원작 소설 대박으로 이어졌고, 세계 독서시장은 영화와의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판타지 소설들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중이다. 영국에서 출발한 판타지 열풍도 유럽 대륙과 아시아, 남미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나니아 연대기’의 공동 제작사인 월든 미디어는 최근 아옌데 소설의 영화 판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진지한 여성주의 소설을 발표해 온 아옌데의 의외의 선택’(뉴욕타임스)이다. 이번에 영화화가 결정된 작품은 그녀가 2002년 쓴 모험소설 ‘야수의 도시’. 아마존을 무대로 고고학자 할머니가 손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는 남미 판타지다.
프랑스와 독일의 저명 작가들도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이 이끄는 영국 판타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르메니아 공주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 소피 마미코니안의 판타지 ‘타라 덩컨’은 2003년 발간 직후부터 6주간 프랑스 소설 베스트 1위에 올랐다. 최근엔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로 만들겠다”는 말 한마디에 해외 판권료까지 3배나 뛰었다. 지난 가을 독일의 저명한 청소년문학 작가인 코넬리어 푼케의 판타지 ‘잉크하트’도 “2007년까지 영화로 만든다”는 발표에 베스트셀러 2위까지 올라갔다. 애니메이션도 거든다. 미국 판타지인 ‘어스시의 마법사’는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가 오는 7월 만화영화로 만들어 판타지와의 시너지 효과를 실험한다. 왜 유독 판타지일까? 전문가들은 “소설의 다른 장르와 달리 판타지의 텍스트는 스크린에 펼쳐진 영상보다 독자의 상상력을 더 자유롭게 풀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덕분에 영화관객이 소설독자로 자연스럽게 옮겨 간다”는 것이다.
얼마전 개봉한 중국 무협 판타지 ‘무극’의 소설 버전을 번역 출판한 북폴리오의 관계자는 “영화사와 출판사들 사이에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도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과 미국 출판사들의 저작권 거래를 중계하는 출판 에이전트에 따르면 “소설 독자층이 리얼리즘을 떠나 판타지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향후 10년간 판타지 소설과 영화의 동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음반수출 작년 1억달러 돌파

지난해 영화 배급권과 음반 판권 등의 해외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가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최근 아시아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한류 열풍’에 따른 것으로 해외 영화나 음악 등을 들여오면서 지급하는 액수에 육박하는 규모다.
지난 2월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수지상의 음향·영상서비스 수입은 1억2,670만 달러로 전년(5,570만 달러) 대비 127%나 증가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음향·영상서비스 수입은 영화 배급권과 TV 프로그램, 음반 제작 용역 등을 해외에 팔아 벌어들인 돈을 의미하며 비디오테이프나 DVD, CD 등 현물 수출은 제외된다. 음향·영상서비스 수입은 1997년 60만 달러를 시작으로 △1998년 140만 달러 △1999년 800만 달러 △2000년 1,340만 달러 △2001년 2,380만 달러 △2002년 4,430만 달러 등으로 꾸준히 늘다 2003년 2,790만 달러로 줄어든 뒤 2004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한편 해외에서 영화 배급권과 음반 판권 등을 사들이면서 지급한 돈은 지난해 1억5,910만달러로 전년(1억5,220만 달러)보다 4.5% 늘어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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