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처럼 드러나는 새로운 의혹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새 정부가 출범하는 취임식을 앞두고 지난 대선기간에 불거진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선거개입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쟁점은 2가지다. 과연 국정원이 실제 선거에 개입했느냐와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이 부실수사 혹은 사건은폐를 시도했느냐이다. 사건의 시작은 지난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1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오후 7시 민주통합당으로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국정원 요원이 포털 사이와 정치 관련 홈페이지에 접속해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무차별적으로 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밤의 대치상황
당시 민주통합당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제보자는 국정원 심리정보국 안보팀 소속 김 아무개 요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3개월 간 근무하면서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댓글을 달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제보자는 국정원 내부 상황에 대해서도 함께 제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보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2년 11월부터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전 담당부서를 심리정보국으로 격상시키고 안보 1, 2, 3팀으로 명명된 세 개 팀을 신설했다. 각 팀에서는 70여 명의 요원들에게 개인 노트북을 지급하고 매일 주요 정치, 사회 현안에 대해 게재할 댓글 내용을 하달해왔다고 한다.

이들 요원은 국정원 청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다수의 요원이 동시에 댓글을 달며 선거개입활동을 할 경우 IP주소 추적 등으로 발각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또한 이들 요원들은 오전에 국정원에 출근해서 전날 수행했던 작업들을 보고하고 지침을 받은 후 오후에는 청사 외부에 나와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에 제보를 접수한 민주통합당 공명선거 감시단과 김현 의원은 경찰과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당 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 1명 등과 함께 해당 오피스텔을 급습했다. 이들의 방문에 문을 연 김 아무개 씨는 “국정원 직원인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는 짧은 답변을 하고 즉시 문을 닫았다.

김 씨의 대답을 들은 세 명을 대답을 듣고 자리를 떴지만 이후 오피스텔 앞에서의 대치상황은 길어졌다. 소식을 들은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는 조정식 소통1본부장, 우원식 총무본부장, 강기정 동행2본부장 등을 추가로 급파했다.

오후 10시30분경 김 씨의 친오빠와 부모님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 후 김 씨는 “오빠가 오면 이야기하겠다”던 입장을 바꿔 “IT전문가가 들어오면 협조할 수 없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내어 줄 수 없다고 버티기 시작했다.

국정원 직원 맞지만 “대선 개입한 적 없다”
국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고 “대선 관련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일체의 정치적 활동은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한 “민주당이 주장하는 역삼동 오피스텔은 국정원 직원의 개인 거주지인데,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개인의 사적 주거공간을 무단 진입하여 정치적 댓글 활동을 운운한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정보기관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것은 네거티브 흑색선전이며 법적대응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단 국정원의 보도자료가 당초 김 아무개 씨는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준 셈이었다. 민주통합당 진성준 대변인도 이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추가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은 처음에 문제의 인물이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완강하게 부인하더니 이제는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을 인정했다”며 “만일 국가정보원이 우리당에 제보된 바처럼 대선에 개입하여 불법선거를 자행했다면 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국기문란행위”라고 비판했다.

대치상황이 이어지던 중 김 씨는 12일 오전, 기자들에게 “상황이 억울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돌연 인터뷰를 요청했다. 김 씨는 전화통화를 통해 “문재인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쓴 적이 없고, 정치적 중립을 분명히 지키고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왜 국정원 직원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거짓말이라고 표현하면 곤란하다”며 “부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답했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신분을 속이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어 구체적인 조직내용과 소속 부서 등 업무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김 씨는 “오빠가 오면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지 선관위 직원이든 경찰이든 기자든 집에 들어오게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들어와서 필요하면 촬영까지 하라고 얘기했다는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제하겠다는데, 사생활이 포함돼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열고 협조할 사람은 없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이와 함께 김 씨는 “부모님이 오셨을 때 등기부등본도 들고 왔는데, 서류를 보면 알겠지만 2년 전부터 실제로 사는 공간”이라며 “집안내부를 촬용해 보내드릴 수 있으며, 이는 국정원 사무실이 아니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경찰의 석연치 않은 수사발표 뒤집기
2012년 12월16일은 대선 전 마지막 TV토론이 있던 날이었다. 이전 선거에 비해 TV토론이 적었던 탓에 유권자들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방송이었다. 그런데 TV토론이 끝난 밤 11경 경찰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발송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정원 여직원 김 아무개 씨가 대선과 관련해 어떠한 댓글을 단 흔적도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대선 막바지의 주요 이슈와 관련해 경찰이 국정원 직원이 대선에 개입한 바 없다는 명확한 결론을 내 주는 보도자료였다.

 당시 경찰은 국정원 직원에게 직접 제출받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2개에서 정치와 관련된 댓글이나 글을 쓴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각종 스마트 기기가 활성화된 오늘날 댓글을 컴퓨터만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컴퓨터로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경찰의 이러한 수사발표는 다소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는 비판이 불거진 대목이다.

보도자료 배포 이후 이어진 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집중적으로 질문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추가 수사 이후 결론이 바뀔 가능성이 있는지, 또한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성급한 게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브리핑을 맡은 수서경찰서장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단호하게 답변했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후 곳곳에서 반전의 기미가 일기 시작했다. 국정원 직원 김 아무개 씨가 아이디 여러 개를 이용해 정치 관련 글에 찬반 표시를 하는 방법으로 활동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경찰은 이번에도 이번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급급하는 모습이었다. 국정원 직원이 게시글을 쓰긴 했지만 정치와 관련된 글은 전혀 없었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졌다. 정치 관련 글을 쓴 적이 없다던 국정원 직원 김 아무개 씨가 120여 차례에 걸쳐 정치 관련 글을 직접 게시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게시판 글들은 주로 4대강사업 등 현 정부의 정책을 옹호하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대해 반대하는 등 분명히 정치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이후 김 씨와 동일한 방식으로 글을 게시한 사람이 또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또한 국정원 직원이 활동했던 사이트가 2개가 아닌 3개라는 사실도 추가로 밝혀졌다.

이에 경찰을 향한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경찰의 수사발표가 뒤집히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의도적으로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기 시작한 것이었다. 부실한 수사결과를 대선 3일 전에 발표한 것도 이러한 비판의 불길에 더욱 부채질을 한 꼴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축소, 은폐 의혹에 대해 극구 부인하고 나섰다. 여야가 시급히 수사를 진행하라고 해서 결과를 발표했던 것뿐이며,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김기용 경찰청장까지 나서서 “축소나 은폐 수사는 전혀 없었다”고 강변했다.

김 청장은 “정치적 글을 판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이고, 당시의 대선 주자 3명의 이름과 그들이 소속된 정당 이름으로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검색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정상적인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정원도 말 바꾸기, 커지는 의혹들
당초 국정원은 인터넷에 글을 쓴 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결과 직원 김 아무개 씨가 진보성향의 ‘오늘의 유머’ 홈페이지에서 벌인 활동에 대해 “김 씨가 직접 게시글을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국정원의 완강하고도 거듭된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이러한 인터넷 글 게시 활동이 “대북 심리전 차원의 활동”이었다는 해명을 내왔다. 국정원은 1월31일 보도자료를 내고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글은 김 씨가 북한 IP로 작성된 글들이 출모하고 있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서 북한 찬양, 미화 등 선전선동에 대응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대북심리전 활동을 위한 글이지, 정치적 목적으로 올린 글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보도자료에서 국정원은 북한 미사실 발사 비판, 대법원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 사건 등을 다룬 김 씨의 글을 예로 들며 “이러한 글들을 정치적 목적으로 게재했다고 오도하는 것은 정보기관의 대북심리전 활동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대북심리전 목적으로 하는 김 씨의 활동이 왜 국내 인터넷 사용자를 대상으로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야당을 비판하고 현 정부를 옹호하는 등 김 씨가 작성한 국내 정치 관련 글들과 대북심리전과의 연관성 여부도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김 씨가 글을 남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김 씨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3의 인물들이 38개의 아이디로 165건의 글을 게시한 것으로 나타나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김 씨로부터 아이디 5개를 받아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린 이 아무개 씨 외에도 여러 명이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도 포착돼 조직적인 개입 의혹마저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관계자는 “이 씨가 사용한 아이디 5개와 IP가 겹치고 활동내용이 비슷한 33개의 아이디 그룹을 분석한 결과 이 씨의 아이디를 포함해 38개 아이디로 165건의 글이 게시됐다”며 “이 게시물들은 김 씨가 쓴 91개의 글보다 적나라하게 정부와 여당을 편드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게시글에 대한 추천, 반대를 표시한 것은 2,000회가 넘었다.

33개의 아이디를 사용한 사람이 여러 명이라는 정황도 나왔다. 해당 아이디들로 게시글이나 추천, 반대 표시를 남긴 시간 차가 적게는 0~1초 사이인 것도 여러 건 있어서 혼자서 이 짧은 시간에 아이디를 바꿔가며 활동하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더욱 미심쩍은 점은 이 아이디 중 일부는 같은 이메일 계정으로 해당 사이트에 가입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이트는 실명 없이 이메일 계정만 있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한편 경찰은 국정원 직원 김 아무개 씨를 도운 것으로 알려진 이 아무개 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수사하기로 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민주통합당이 2월18일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이 씨를 고발함에 따라 이 씨의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바뀌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씨는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 경찰은 휴대전화 메시지로 1차 소환통보를 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씨를 이번 사건의 중요 참고인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으나 수차례 조사에 불응하다 1월 초순경 잠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경찰은 “이 씨가 소환통보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한편으로는 “강제수사로의 전환은 아직 언급하기 이르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특검 필요”
이번 사건을 두고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찰의 부실수사를 비판하며 국정원 개혁을 촉구했다.

지난 2월5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6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국정원 직원 김 아무개 씨가 지난 대선 기간 중 인터넷에서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를 비판하는 게시물과 찬반표시를 작성한 것은 정상적인 국정원의 업무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성토했다.

또한 “김 씨의 행위가 인터넷상의 종북활동에 대응하기 위한 고유 업무”라고 밝힌 국정원의 해명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김 씨가 작성한 글들은 대북 관련 내용에 국한되지 않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 주요 정책에 대한 여론을 호도해 왔다”며 “그간 국정원이 국민을 사찰해 왔음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또한 “국정원의 정치개입 관련 국내보안정보 수집 권한은 원칙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에서 “국회는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과 경찰의 부실수사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며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돼도 특별검사 임명을 통한 재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월6일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국가정보원 직원 김 아무개 씨의 불법 선거운동 의혹 사건을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하며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표 교수는 이날 민주통합당 초·재선 의원 모임인 ‘주춧돌’ 초청으로 국회에서 한 세미나 강연에서 국정원 여직원 사건과 새누리당 불법선거운동 사건 등에 대해 “수사가 이해관계에 매몰되거나 권력의 압력에 굴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표 전 교수는 1972년 미국 대선 당시 닉슨 대통령 측이 상대편 선거운동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거론하며 “미국 언론은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강력한 부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줄기차게 보도했고, 경찰도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수사해 결국 대통령이 2년 만에 하야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원칙적으로 믿고 싶지만, 정치적 힘에 기대지 않으면 그 자리에 오르기 힘든 현실에 길들여진 두 기관의 고위 간부들이 강한 사명감과 의식만 갖고 할 수는 없다"며 "결국 국회에서 좌시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사흘 앞두고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해 의혹의 눈초리를 받는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며 “그런 분이 자리에 앉아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놔둬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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