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사회 Special
지워지지 않는 상흔 ‘한국전쟁’67년의 시간 흘렀지만 평화 ‘제자리걸음’
  • 신혜영 기자
  • 승인 2017.06.13 21:03
  • 댓글 0

 

   
 
3
년 동안 한반도 좁은 땅덩어리에서 동족끼리 400만여 명이 피를 흘린 전쟁.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이 엄청난 희생도 모자라 분단만 강화된 민족 최대의 비극은 서로를 향한 원한과 폐허로 변한 국토, 38도선 대신 휴전선이라는 이름만이 녹아있다. 이러한 여건에서 한국전쟁을 거론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냉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어느덧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나 전쟁의 아픔과 교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상이군경과 그 유가족들이 전사한 옛 전우와 가족들의 품으로 하나둘씩 우리들 곁에서 떠나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들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등 지나간 조국의 위기들에 대해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만 인식하여 나라사랑정신이 날로 희박해져 가고, 국권회복과 국토수호를 위해 흘린 피와 눈물의 가치들이 옛이야기로 잊혀 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신의 안위는 뒤로한 채 오직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번영만을 갈망하면서 먼 이국땅에서 모진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신 순국선열들, 이름 모를 고지에서 조국수호를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호국영령들 바로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보훈이란 국가 위기시에는 나라를 지키고, 평상시에는 공동체의 존속과 발전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단합된 국민정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소중한 정신적 가치이며 또한 지난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예우를 통해 나라를 위한 위국헌신이 국가발전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도록 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훈의 의미를 알고 나라사랑하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갈 때 국가발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 유엔평화기념관은 4월 26일 공존의 광장에서 6․25전쟁 때 ‘라이프지’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올해 백한살인 데이비드 더글라스 던컨(David Douglas Duncan)가 그의 한국전쟁 사진집‘디즈 이즈 워(This is War)’에 실린 사진 30점으로 사진 기증식을 개최했다. 데이비드 던컨은 6․25전쟁 당시 1950년 7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한국군과 미 해병대와 함께 낙동강 전투까지 취재하며 참혹한 전쟁 속에 살아남아야하는 병사들의 개개인의 내면에 초점을 맞춰 인류가 만들어낸 비극에 경각심을 가지게 하는 사진들을 통해 전 세계에 한국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알린 인물이다.
 
허리 잘린 한반도, 분단의 역사 시작
 
한국전쟁은 1945815일 한반도를 강제 점령하고 있던 일본의 패망에 따라 미·소의 한반도 분단정책에 의해 비롯됐다. 북한 공산 정권의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 하에 1950625일 기습적으로 38도선을 불법 기습 남침한 전쟁. 이는 공산 세력의 세계적화 의도를 참전국과 함께 저지한 세계자유수호 전쟁으로써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대표한 전쟁이다.
 
194535년간 일제의 모진 수탈과 압박을 받다가 우리나라는 광복을 맞이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과정에서 당시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남한은 미국이, 북한은 소련이 점령함에 따라 남북 분단의 비극이 시작됐다. 그리고 5년 후인 1950년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가장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면서 남과 북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 이로 인해 한 민족이 겪는 아픔은 더 커갔다. 분단은 민족적 차원에서 번영과 발전을 저해했으며 불필요한 경쟁과 군사적 대치, 자원의 분할 사용 등과 같은 막대한 민족 역량의 낭비와 손실을 초래하였다. 무엇보다 혈육과 헤어지는 아픔 그리고 망향의 한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 6.25전쟁에서 국군·UN군·학도의용군·여자의용군의 활약상과 현충일, 6.25전쟁, 제2연평해전 기념식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은 1950년 피난민을 돕는 미국 헌병 모습.
 
치밀한 사전 준비에 의한 계획된 전쟁
 
북한 김일성은 1946년부터 북한을 공산체제로 만들고 소련의 계획과 지원 하에 북한의 모든 역량을 전쟁준비에 동원했다. 따라서 북한군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 소련제 전차 등 최신예 장비로 중무장되었고, 중국내전을 통해 전투경험이 축적된 막강한 전투 인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전쟁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발발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치밀한 사전 준비에 의한 계획된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남한의 군사력은 상대적 열세에 있었다.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국군은 노후화된 경장비 위주로 무장되어 있었고, 체계적인 전술훈련도 실시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따라서 한국군은 겨우 국경을 경비하고 내부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치안군 수준의 장비로 경무장 되어 있었고 한반도에서의 힘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남북한의 군사력 불균형은 전쟁 발발 초기에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은 북한의 기습남침 3일 만에 함락되었고, 국군은 북한의 전차를 대전차 무기 하나 없이 맨주먹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
 
1945년과 1950년 초에 소련을 방문한 김일성은 남침계획을 설명하고 전차 및 야포 등의 지원을 스탈린으로부터 받아냈고, 중공군에 편성된 한인 약 4개 사단의 병력을 북한군에 편입시킨데 성공했다.
 
미군 또한, 북한군의 전력을 과소평가해 대전차 무기도 재대로 갖추지 않은 채 전투에 투입되어 막대한 손실을 당했다. 미군과의 초기 전투에서 자신감을 얻은 북한군은 기세가 높아져 더욱 공세를 강화했으나, 전투력을 재정비한 국군과 미군은 지연전을 전개해 최후의 방어선인 부산 교두보를 확보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피난민으로 가장, 아군의 후방으로 침투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혔고, 특히 미군은 피난민과 북한군을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피난민에 대한 공포심을 가질 정도로 피난민을 기피하는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국군과 유엔군은 적의 총공격을 결사적으로 방어하는 한편, 재정비를 통해 반격을 위한 준비를 갖추었고,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적의 후방을 차단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승기를 잡은 국군과 유엔군은 1950928일 서울을 탈환하고, 한반도에 통일된 독립국가를 수립한다는 유엔 결의안에 따라 10138도선을 돌파하여 북진을 감행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100여만 명의 중공군 개입으로 국군과 유엔군은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한국전쟁이 발발된 지 1년이 경과된 19516월에는 다시 38도선을 중심으로 모든 전선이 소강상태를 이루는 상황에서 치열한 국지전이 전개되었다. 그 후 19537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됨으로써 전쟁이 끝났으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지 못하고 민족의 분단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사진은 1950년 다리 건너는 피난민들.
 
끝나지 않은 비극의 노래, 전쟁의 참혹한 피해만 남아
 
한국전쟁은 결국 지금의 휴전 체제가 의미하듯 무승부로 끝난 것이기 때문에 남북 어느 쪽도 역사의 주류를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전쟁으로 한국이 입은 폐해의 규모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한국전쟁의 3년간에 걸친 동족의 전화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내었다.
 
전투 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 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또한 전쟁기간 중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남한 지역을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인민재판 등의 무자비한 방법에 의해 반동계급으로 몰려 처형당한 희생이었다. 또 전쟁 기간 중 북한은 85,000명에 달하는 각 계층의 지도급 인사들을 대한민국으로부터 납치해 갔다. 이 가운데에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저명한 학자·종교인·공무원들이 상당수 포함되었으며 남북한 이산가족 1,000만 명이 생겨났다.
 
한국전쟁으로 입은 물질적인 손실도 엄청났다. 남한과 북한 모두 사회·경제 기반이 거의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인적, 물적 손해보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정신적인 상처였다. 한국전쟁은 서로 상대방을 미워하고 복수심을 갖게 만들었던 것이다. 서로 사상의 차이 속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동포애를 상실해 가고 있는 현실이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우리의 비극은 어디까지인가
 
조국이 분단된 채 남북한이 서로 다른 체제와 사회 속에서 살아온 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다. 해방당시 풍설에 미국 놈 믿지 말고 소련 놈에게 속지 말아 일본 놈 일어나니 조선사람 조심해라라는 말이 떠돌았다. 반세기가 훨씬 넘긴 현재 이 땅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해방 3년 후에 남북은 각자의 정부를 세우고 서로를 괴뢰정부라고 하면서 미소의 냉전 사슬로 스스로를 묶었다. 단일민족으로 동일한 언어와 문화, 혈통을 지닌 우리는 반드시 공존·공영해야 할 동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국가로 남아있다. 지금도 북녘, 땅에는 국군포로를 비롯해 납북자 등 약 2,486명이 억류된 상황에서 이제, 우리는 분단의 비극적인 현실을 방관만 할 수 없게 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은 남북과 관련 참전한 외국인의 희생을 포함해 사망 수백만, 부상 수백만, 막대한 재산의 피해를 남기고 치열한 전쟁 1년여와 대치교섭 2년여, 3년여 만에 휴전협정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엄밀히 말해서 현재도 휴전일 뿐이다. 이 전쟁의 희생자 수는 어떤 자료에도 정확한 숫자를 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많다.
 
사실 우리는 그 동안 1970년의 ‘7.4 공동성명발표,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조인, 2000년의 ‘6.15 남북공동선언등 남북 당국간 몇 차례의 정부간 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합의문서는 휴지화의 위기에 놓인 채로, 아직 남과 북이 적대적 군비경쟁을 추구하는 냉전대결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젠 정전 상태에서 벗어나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의 정치적인 평화와 민족의 참된 화해가 필요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구촌은 빠른 속도로 세계화를 향해서 변화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양대 진영간에 조성됐던 적대적 냉전 상태도 이미 해소되었고, 지구촌의 모든 나라와 세계시민은평화로이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 화해와 협력의 길을 찾아가기에 분주하다.
 
한국전쟁에서 약 30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생명을 잃었고 37,000여 미군이 전사했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 하는 것이다. 전쟁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모한 짓인지 깨달아야 하며 다시는 동족끼리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우리 민족의 운명은 누구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한국전쟁이 우리 민족에게 주는 교훈이다.
 
   
▲ 무운장구 태극기. 출정 당시 조국수호를 맹세하며 서명했다.
 
선조들의 호국정신 되새겨야
 
호국보훈의 달 6월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 그리고 그분들의 공훈을 기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한편, 모든 국민이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다지는 뜻 깊은 달이다. 나날이 호국보훈정신이 희미해져가는 지금, 잊혀진 보훈정신을 되살리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통합과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조국을 지키기 위해 초개와 같이 자신의 육체를 희생한 순국선열·호국영령들에 대해 아직까지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국경일인 현충일은 언제부턴가 가족나들이 날이 되어버렸고, 6월 민주항쟁, 한국전쟁 기념일, 6.10 만세운동과 같은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정신은 도태되어 버렸다.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주변국들의 간섭을 받으며 경제적, 정치적 외압 속에서 여전히 조국의 위기는 진행형이다. 또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민족의식이 희석되어가고 있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사회전반에 걸쳐 유공자들에 대한 예우와 존경의 정신이 정착,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경우, 길거리나 공원의 명칭에 국가유공자의 이름을 붙이고, 또 학교나 공공시설에 호국보훈상징물을 조성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은 생활 속에서 유공자들의 희생정신을 쉽게 느낄 수 있고,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우리도 이와 같이 곳곳에 유공자들을 기리는 상징물을 조성한다면 국민들의 희박해진 호국보훈정신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자라나는 다음세대의 투철한 보훈정신확립을 위해 호국보훈교육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보훈관련교육을 학교 정규과목으로 가르쳐 어릴 때부터 보훈정신이 생활 속에 깃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교육 속에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민족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거침없이 애국심을 발휘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월남전 등에서 전사한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보훈관련 주무부서인 국가보훈처의 위상이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 다양하고 내실 있는 보훈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 볼 때 현재 국가보훈처의 대내외적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나 여전히 다른 부처와 비교해 볼 때 재정적, 행정적, 법제적인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보훈처는 보훈대상계층의 다변화에 대응해 여러 가지 맞춤형 수혜정책을 강구해서 국가유공자의 실질적인 예우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며, 원활한 보훈서비스를 위해 관계기관과도 긴밀히 협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개선책이 적절하게 시행된다면 국가유공자들의 물적·질적 생활수준 향상에 기여함은 물론 국민전체의 통합과 단결을 통한 우리나라의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_뉴시스]

신혜영 기자  gosisashy@sisamagazine.co.kr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혜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