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고 다시 쓰는’ 지속가능한 재생의 도시로 전환하는 상징적 계기

 

   
 
지난 5월 20일, 서울역 고가가 화려한 변신을 알리며 시민들의 공중보행로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가 수년 간 야심차게 준비해 온 ‘서울로7017’은 ‘도시재생사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공사 첫 삽을 뜬 지난 2015년 12월 13일부터 개장일인 5월 20일까지 총 525일 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서울로7017은 오랜 추억을 뒤로 하고 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중 보행길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됐다.
 
수년간 뜨거운 감자가 됐던 서울로7017이 5월 20일 드디어 개장하며 시민의 곁으로 다가왔다.  20일 오전 10시 서울로7017이 전면 개방하면서 서울역 고가를 비롯해 만리동 광장, 서울역 광장 등 일대에서는 늦은 밤까지 다채로운 개장기념 행사가 열려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모았다. 서울로7017을 비롯해 만리동광장·목련마당·장미마당 등지에서는 거북이 마라톤, 7080통기타밴드 공연, 마술쇼, 서울드림페스티벌 시민경연, 마임공연, 포크송 공연, 인디밴드 공연, 해금연주, 서울시국악관현악단·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서울시무용단 등의 개장기념 행사가 열렸다. 서울로 7017을 둘러본 네티즌들은 높이 17m에 총 길이는 1024m에 달하는 공중 보행길이 서울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특히 해가 진 뒤 111개 통합폴에 달린 LED 조명 555개와 화분 551개를 둘러싼 원형 띠 조명이 자아내는 색채의 향연에 주목했다. ‘서울로7017’ 개장 첫 주말과 휴일에만 25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서울역 고가 도로를 ‘차량길’에서 ‘사람길’로 재생하고, 단절된 서울역 일대를 통합 재생하여 지역 활성화와 도심 활력 확산에 기여하는 사람 중심 도시재생의 시작이다.
 
   
▲ 고가차도에서 공중보행로로 탈바꿈된 '서울로 7017' 개장식이 열린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장애인 단체로 부터 장미꽃과 빵을 전달받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수년간 준비해온 야심작 중 하나로 박 서울시장은 지난 4월 기자설명회 자료에서 “서울로7017은 ‘지우고 새로 쓰는’ 전면철거형 개발 중심도시에서 ‘고쳐 쓰고 다시 쓰는’ 지속가능한 재생의 도시로 전환하는 상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서울역 고가는 서울 근대화의 상징이자 1970~1980년대를 대표하는 명물이었다. 서울역 고가는 서울역 철로시설들로 단절된 도심과 남대문시장 일대, 그리고 서울역 서측 구역 일대를 잇는 연결로 기능을 오랫동안 해왔다. 서울역 고가는 만리동·청파동·서계동 일대 소규모 봉제공장과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을 연결하는 역할도 해왔다. 이 때문에 서울역 고가는 1970~80년대 서울의 공장과 시장을 잇는 산업적 유산으로서의 의미도 적지 않다.
 
그러던 서울역 고가는 1990년대 들어 도시 미관을 저해하는 흉물로 평가되며 명예가 실추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서울역 고가 도로의 안전성 문제는 매년 제기됐고, 서울시는 정기적인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 진단을 통해 매년 보수공사를 진행해왔다. 그러나 2006년 심각한 안전문제 제기로 차량운행을 전면 통제하고 철거 수순을 밟게 됐다. 철거를 눈앞에 둔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은 공중보행로로의 변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뉴욕 ‘하이라인파크’를 둘러보고 감명을 받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철거를 앞둔 서울역 고가도로에 하이라인파크 같은 공원을 조성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서울역 고가 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하중 때문이라면, 자동차길에서 사람길로 바꿔도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1970년 8월 15일 완공해 2015년 12월 13일 0시 차량 통제가 이뤄질 때까지 정확히 45년4개월, 총 1만 6556일간 사용된 서울고가가 오랜 억을 뒤로 하고 새롭게 탄생되는 순간이다.
 
‘서울로7017’에는 1970년 준공된 차량용 서울역 고가도로가 2017년 17개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17m 높이 고가라는 뜻도 있다. 숫자를 뺀 ‘서울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 길’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박 시장은 “서울로 7017을 기폭제로 해 서울 4대문 안을 20분 내에 걸어 다닐 수 있는 세계적인 보행친화도시로 조성해 나감으로써 환경개선, 대기질 개선, 에너지 절감, 지역경제 활성화, 시민 삶의 질 향상의 1석5조 미래비전을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지난 5월 21일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한 ‘서울로 7017’을 찾은 어린이들이 공중자연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울로7017은 회현역·남산육교·서울역광장·청파동·중림동을 연결하는 17개 접근로가 있다. 공중 연결 통로 2개, 엘리베이터 6개, 에스컬레이터 1개, 횡단보도 5개, 연결로 3개 등이다.
 
17개 보행길로 연결되는 구역은 6개다. 퇴계로 주변(퇴계로·남대문시장·회현동·숭례문·한양도성), 한강대로 주변(대우재단·호텔마누·세종대로·지하철·버스환승센터), 서울역광장, 중림동 방향(중림동·서소문공원), 만리동 방향(만리재로·손기정공원), 청파동 램프(공항터미널·청파동) 등이 서울로7017을 통해 연결된다. 대우재단빌딩으로 이어지는 연결통로를 통해 건물로 들어간 뒤 1층과 연결된 힐튼호텔 샛길을 지나면 남산공원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호텔마누 연결통로를 통해서도 남대문시장 등으로 이동할 수 있다. 한양도성 내·외부가 도보로 연결돼 도심에 집중된 서울의 핵심 문화관광명소를 걸으면서 즐길 수 있게 됐다. 서울로 7017이 ‘사통팔달(四通八達)’ 보행의 중심축이 되는 것이다.
 
특히 서울로7017은 살아 있는 녹색 보행길을 지향하며 수많은 식물을 키운다. 66가지 형태 원형 화분 645개에 228종 2만 4085주에 달하는 꽃과 나무를 심었다. 원형 화분 중 가장 큰 것(지름 4.8m, 둘레 15m)은 어린이 12명이 두 팔을 벌려 껴안아야 할 정도로 규모가 있다. ‘공중 수목원’으로서의 서울로7017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영재 서울로7017 건설사업관리단장은 “자동관수와 유도배수로 최적의 환경을 조성했다”며 “서울로7017은 가나다순으로 배치돼 식물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식물의 계통수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서울로7017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 ‘반달’ 노랫말에 등장하는 ‘푸른하늘 은하수’와 ‘계수나무 한나무’를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계수나무(퇴계로 인근) 등 꽃·나무를 보면서 걸을 수 있는 살아있는 식물도감이 해가 지고 나면 별이 쏟아지는 은하수로 변신해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한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 고가차도에서 공중보행로로 탈바꿈된 ‘서울로 7017’ 개장식이 열린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로 7017가 화려한 조명이 어우러져 도심을 밝히고 있다.
 
밤이 되면 서울로7017은 111개 통합폴(조명·태양광·CCTV·비상벨·와이파이 등이 함께 설치된 가로등)에 설치된 총 555개 LED 조명등을 가동한다. 청색 조명은 바닥을 비춰 아름답게 펼쳐진 은하수를 연출하고 백색 조명은 나무를 비춰 반짝이는 별을 표현한다. 설계자인 비니 마스가 제안한 대로 ‘별이 쏟아지는 짙푸른 은하수’가 구현되는 것이다.
 
고인석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해가 진 뒤 서울로7017을 걸으면 짙푸른 바닥조명과 흔들리는 나뭇잎이 별처럼 반짝여 은하수를 걸어서 건너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서울로7017은 서울형 도시재생의 아이콘이자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가에서 특히 눈에 띈 점은 기존 서울역 고가 난간과 바닥판 형을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그래서 이 구간 아래로 차가 통행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이 외에도 서울로7017 상부는 문화콘텐츠시설 8곳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서울로전시관, 담쟁이극장(인형극장), 정원교실(정원관리체험), 장미·목련무대(거리무대), 방방놀이터, 공중자연쉼터, 호기실화분 등이 마련되어 있다. 문화시설 외에도 개별관광객을 위한 종합관광정보센터 ‘서울로여행자카페’, 20여 종의 공식기념품을 판매하는 ‘서울로가게’, 간식거리를 판매하는 식상과 카페 등이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로로 바꿨다는 정책적 측면에 의미가 있긴 하지만 직접 현장을 찾은 방문객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오감으로 느끼는 풍광과 정취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서울로7017의 야경을 볼 때의 감흥은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서울시는 앞으로 서울로7017을 찾는 연인들을 위한 공간이나 행사를 개발해 더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충열 서울시 서울역일대발전기획단장은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서울로7017이 새로운 데이트 장소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서울로7017’은 국내 최초 공중보행로로 큰 기대를 받고 있지만 아직 해결해야 문제들도 남아있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바로 경제적 효과다.  인근 지역 상공업자들은 서울역 고가도로가 보행로로 바뀐 뒤 어떤 경제적 효과를 낳을지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과거 서울역 고가를 통해 인근 동대문·남대문시장으로 의류를 납품했던 용산구 서계동 봉제업자들은 2015년 12월 고가 폐쇄와 이후 이어진 보행로 조성 공사 과정에서 거래가 다수 끊기는 등 영업에 타격을 입었다. 남은 거래처에 납품을 하는 과정에도 각종 교통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충열 서울시 서울역일대종합발전기획단장은 “심각한 건물 노후와 공실률 증가, 업종변경 증가 등의 문제를 드러내며 2003년에 1위였던 남대문시장의 방문선호도는 2014년에 7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여기에 서울역 고가 도로를 보행길로 조성할 경우 교통 불편으로 상가 침체가 가속화될 것을 우려하는 상인들이 많다”라며 “그러나 현재 남대문시장은 많은 차량이 다니고 있음에도 상권침체가 지속되고 있다. 차보다 사람이 더 많이 오고 가게 된다면 오히려 시장 상권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속된 대화를 통해 그쪽도 살아나게 해야 한다”며 “(서울시) 경제진흥본부에서 봉제지원센터를 (건립을) 검토하고 있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도 염천교 상우회와 계속 소통하면서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 중 반영할 수 있는 것은 반영하고 있다”고 대응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로7017 개통 후 보행자 증가에 따른 파급효과를 인근지역으로 확산시키는 것 역시 풀어야 할 과제중 하나다. 서울로7017이 인근 보행길에 있는 상권을 살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단장은 “서울로7017이 충무로·퇴계로·서울역을 거쳐 만리재로, 청파로, 중림로로 뻗어나가는 ‘생선 등뼈’ 역할을 한다면 잔가시 역할을 하는 숨은 골목길들을 발굴해 정비해 나가야 한다”며 “약현성당 가는 길이나 손기정공원 가는 길 등을 그동안 사람들이 몰랐는데 앞으로 이런 길들을 계속 정비해야 한다. 이런 길들이 정비되면 동네가 실핏줄처럼 살아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지금 1.7~4.8m의 화분으로 보행로가 상대적으로 좁게 느껴지고 햇빛이나 비 등을 피할 수 있는 시설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박원순표 도시재생사업 ‘서울로7017’이 드디어 개장됐다. 서울형 도시재생의 아이콘이자 서울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란 부푼 기대를 안고 개장한 서울로7017이 서울고가가 국내 첫 공중보행로로 탈바꿈하며 도시재생의 ‘마중물’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사진_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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