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새싹이 거대한 나무가 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끝내 사퇴했다. ‘백의종군’하는 심정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며, 야권단일후보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목했다. 하지만 지난해 있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에게 보여줬던 아름다운 양보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목소리를 격앙돼 있었다. 단일화 협의 과정에서 양측 캠프 사이에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안철수 전 후보는 지난해 9월2일, 청춘콘서트를 통해 서울시장 출마를 시사하면서 기업인이자, 학자에서 단번에 정치신인으로 탈바꿈했다. 신인이면서도 특대형급이었다. 4년 동안이나 지속돼 왔던 박근혜의 대세론을 위협했으며, 이렇다 할 정치적 활동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년 내내 40%를 상회하는 지지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줄곧 대선출마에 관심이 없다고 언급해 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는 결국 출마했다.
출마선언을 하던 날, 결연한 표정과 목소리로 ‘새정치’를 외치던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영남과 호남의 표심이 극명하게 갈라져 있고, 진보와 보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수많은 정치구태를 보아왔다. 그나마 순수하고 진정어린 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여겨왔던 진보정당도 얼마 전 이른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파문’으로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이런 와중에 안철수 전 후보가 들고 나온 ‘새정치’의 화두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설레게 했다. 이는 고스란히 지지율에 반영되어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와 표를 더하면 박근혜 후보를 충분히 이기도 남을 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해내는 것은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협상개시 하루만에 협상중단이 선언되는가 하면, 단일화 룰을 둘러싸고 각종 파행이 빚어졌다.
이런 점에서 이번 안 전 후보의 사퇴선언은 일종의 ‘백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현실정치를 처음 경험해 보는 안 후보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새정치’와 그것을 통한 희망을 보여주겠노라고 선언했는데, 첫 단추라 할 수 있는 단일화 과정에서 잡음이 계속해서 나왔으니, 그 상심이 오죽했으랴 싶다.

양측 캠프와 실무진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현실정치는 이론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존재하는 정글에 비유될 정도로 살벌하고 치열하다. 오직 순수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현실정치에 뛰어든 안 전 후보 입장에서는 그것이 매우 매섭고, 서운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그는 여전히 40%가 넘는 국민들이 사랑하는 덕망있는 인사다. 다행히 그는 사퇴를 선언한 기자회견에서 정계은퇴에 대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오히려 “새정치에 대한 꿈을 잠시 접는다”는 말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기도 했다.
안철수 전 후보가 대통령감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가 정계에 등장해 이른바 ‘안철수 열풍’,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정체되고, 구태를 반복하던 우리 정치계에 적지 않은 충격과 변화를 끼친 것도 사실이다.
부디 그가 꿈꾸는 ‘새정치’의 희망이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길 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정치새싹이 예상하지 못했던 모진 비바람에 잠시 고개를 숙인 것으로 여기고 싶다. 한 번 틔운 새싹은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 국민들의 보살핌이 계속된다면 무럭무럭 자라 거목으로 자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젊다. 그리고 선거는 계속된다. 그의 꿈과 국민의 꿈이 함께 이뤄지는 그날을 기약해 본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