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통합, 공감대 형성할 범주 명확해야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압도적인 지지율은 아니지만 전국 17개 권역 중 14개 권역에서 1위를 차지하며 준비된 대통령의 면모를 입증했다. 그러나 당선의 기쁨이나 대선 레이스의 여독을 풀 시간 따위는 없다. 당선 다음날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하는 탄핵정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헤쳐가야 할 길은 결코 녹록지 않다. 국론통합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누구도 선뜻 그 선을 넘지 않으며, 개혁과 적폐청산을 외치는 목소리는 높으나 야권과의 협치가 발목을 잡는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4강과의 외교 전략 또한 북한의 막가파식(?) 미사일발사로 표류 중이다. 채 닻을 올리기도 전에 난항이 예고되는 문재인 정부의 항해가 거친 파도를 이기고 무사히 순항하기를 바라며 몇 가지 문제점을 짚어본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지난 19대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후보들은 하나같이 ‘국론통합’을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이 누란지세(累卵之勢)의 형국이란 방증일 것이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탄핵정국의 폐해는 촛불을 들었던 쪽이든 들지 않았던 쪽이든 모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대선 당일 방송 3사가 실시한 출구조사에서 국민의 51.4%가 ‘국민통합’을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꼽을 정도다.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 앞에 놓인 책임은 막중하다. 막중한 만큼 또 험난할 것이다. 국정의 매 사안마다 첨예하게 갈린 국론을 수렴하며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당면한 개혁과 적폐청산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하다. 또한 여소야대의 대통령으로서 국회선진화법의 장벽을 넘어 쟁점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도 야권과의 협치는 피해갈 수 없다. 여기에 사드 배치와 북한의 핵과 미시일, 자국이익 우선주의를 천명하는 강대국의 입김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그러나 당장 이낙연 국무총리의 국회 인준부터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표적 공약 중 하나인 일자리창출의 추가경정 예산편성 또한 야권의 반발로 험로가 예상된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해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모두 추경에 반대하고 있어 향후 문재인 대통령의 협치 의지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오후 청와대 상춘재에서 5당 원내대표와 첫 오찬 회동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종석(오른쪽부터) 대통령 비서실장,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
 
개혁과 통합, 천칭저울의 첨예한 추(錘)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일인 5월 9일 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당선 기념행사에 참석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섬기겠다는 약속으로 통합을 강조하는 한편,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들러서는 개혁과 통합 두 과제를 모두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적폐청산과 국민통합이라는 양날의 칼을 어떻게 다룰지는 오롯이 문 대통령의 의지에 달린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저울에 올려진 양 추(錘)가 일정한 무게로 형평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국론분열의 들불은 또다시 거세게 일어날지 모른다.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적 합의다. 개혁 대상과 적폐 대상에 대한 명확한 범주를 정하고,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이낙연과 조국이라는 두 카드를 동시에 선보였다. 정치권과 국민의 반응은 일단 호의적이었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로는 대탕평 인사를 통해 국민통합을, 조국 민정수석이라는 인선을 통해서는 개혁의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그러나 특정 지역 인사를 통한 기계적 통합에만 치중해서는 안 되며, 세대와 계층 간 통합에도 힘써야 한다는 일부 견해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자칫 새 정부 출범 초기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고 야당과의 협치에 소홀한다면 민심 수습과 국론통합의 동력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익히 알고 있기에 문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야당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했다. 그러면서 야당 당사를 방문하는 일이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임기 내내 이뤄질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전달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처한 여소야대 정국의 해법을 13대 국회의 행보에서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당시 정치적으로 노회한 3김(김종필, 김대중, 김영삼)이 포진한 야당은 사안마다 똘똘 뭉쳐 여당에 맞섰으나 지금의 야당은 이렇게까지 단일노선이 아니라는데 여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더불어 대통령이 여소야대를 인정하고 야당에 양보할 것은 양보하는 정치적 묘미도 발휘해 줄 것을 요청한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의당과만 손을 잡아도 괜찮은 그림이 나온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당은 이번 대선에서 정권교체와 개혁을 원하며 압도적인 표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몰아준 호남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요직을 거치면서 국회와 야당의 중요성을 이미 경험한 정치인이다. 여소야대를 인정하고 야당에 줄 건 주는 자세로 임하면 오히려 국정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으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첫 시험대 오른 ‘국무총리 인준’, 소비적 정쟁 지양해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국무총리 인선이 뜻하지 않은 암초로 난항을 겪고 있다.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5대 비리 관련자 원천 배제 원칙’이 그것인데,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세금탈루, 위장전입, 논문표절 비리에 연루된 인물은 고위공직 인선에서 배제하겠다는 원칙이었다. 그런데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줄줄이 위장전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야 협치에 심각한 제동이 걸렸다. 청문회 보이콧을 시작으로 처음부터 청와대를 향한 공세의 고삐를 조인 자유한국당은 이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뿐 아니라 아들의 군 면제 의혹과 세금탈루 의혹 등을 제기하며 청문보고회 채택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취임 초반 다소 우호적이었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도 연이은 위장전입 논란에 거부반응을 보이며 대통령의 해명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이에 맞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하루라도 빨리 국정 공백을 메우고 국정을 정상화하라는 것이 국민의 한결 같은 목소리고 간절함이다”라고 밝히며 “총리 후보자 인준은 수 개월간 이어온 촛불·탄핵·대선 대장정을 마감하고 새 협치시대를 여는 실마리임을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최명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청와대가 이제 위장전입은 향후 고위공직자 임명에 더 이상 배제사유가 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먼저 밝혀야 한다”며 “이 문제를 정리하지 않은 채 총리 인준 문제를 넘길 경우 향후 모든 고위공직자의 인사 청문 과정에서 더 이상 위장전입 문제는 거론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고, 고위공직자의 도덕적 기준은 크게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바른정당의 대선후보였던 유승민 의원은 “대통령 본인이 국민들에게 왜 그렇게밖에 임명할 수 없었는지 설명을 하고 또 사과할 부분이 있으면 사과를 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해법”이라고 제언했으며, 정의당의 대선후보였던 심상정 의원은 “이번 사안은 대통령의 인사원칙에 관한 사안”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과 야당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다운 모습”이라고 단언했다.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로부터 임명동의안을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 인사청문회를 끝내고, 20일 이내 본회의에 회부·처리해야 한다.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은 지난 5월 12일 국회에 접수됐다. 같은 달 29일부터 시작될 6월 임시국회에서 빠르게 처리되지 않는다면 이낙연 총리 후보카드는 불발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꽉 막힌 국정운영의 물꼬를 터야 하는 청와대의 발걸음은 바쁘기만 하고, 문 대통령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급기야 29일 국회를 찾은 전병헌 정무수석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마련한 4당 원내대표와의 정례회동 자리에 참석해 “인사청문회와 관련해서 송구스럽다.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총리 지명을 서두른 게 사실이다”라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아울러 “국무위원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2005년 7월 이후 위장전입과 관련해서는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 특히 투기성 위장전입 문제에 대해서는 사전에 더 강력히 검증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로써 문 대통령의 대야(野) 협치 의지의 첫 시험대로 비쳤던 총리 인준안은 국회를 무사히 통과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5월 17일에 성인 504명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후 가장 인상적 이었던 행보를 물은 결과, ‘적폐청산·개혁(검찰개혁 등)’이 30.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시급한 외교·안보, 한반도 평화 정착 최우선
사드 배치와 한·미 FTA,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위안부 재협상 등 외교·안보 라인에도 녹록지 않은 문제가 산적하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의 정점에는 ‘한반도 평화’라는 대전제가 자리한다. 즉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의 최대 과제이자 궁극적인 목적은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모아진다. 때문에 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고,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취임 이틀 만인 5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시작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며 그동안 마비되었던 정상외교를 재가동했다. 당장 눈에 띄는 관심사는 이달 중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와 한·미 FTA 재협상,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강경한 대북 제재, 중국과 갈등을 빚는 사드 배치 등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마인드로 접근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튀는 행동에 우려를 나타내는 반응들이 많다. 그러나 시각을 조그만 바꾸면 이런 트럼프의 행동들이 자국이익 우선주의에서 드러난 비즈니스 마인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문 대통령 또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임하면 될 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엿볼 수 있었듯, 단기적으로 한국이 줄 수 있는 최대치의 선물을 협상 테이블에 풀어놓고 양국 간 이견을 좁혀나간다면 얼마든지 승산 있는 협상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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