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바른정당 캐스트보터 주도권 경쟁, 정치적 셈법보다는 국민 위한 셈법 우선해야

 

   
 
대선이 끝났다. 사상 초유의 장미대선이었던 만큼 국민적 관심도 지대했다. 그러나 더 큰 관심의 대상은 향후 정치권의 정계개편이다. 과반을 넘지 않는 대통령의 탄생과 여소야대 정국, 그리고 다당제 구도는 주도권을 향한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여기에 국회선진화법까지 가세해 정당 간 이합집산은 더욱 가열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국민의 우려가 있다. 자칫 그들만의 리그에 빠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잊어버릴까 봐서다. 국민은 오직 무너진 국격을 다시 세울 수 있는 협치와 통합을 기대한다.
 
   
▲ 더불어민주당 우원식(오른쪽 두번째) 신임 원내대표가 5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당 김동철(왼쪽 두 번째) 대표 권한대행 겸 신임 원내대표를 찾아 환담하고 있다.

 이번 대선을 가름하는 키워드 중 하나에 ‘소신투표’가 있다. 26.06%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운 사전투표율도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다 하겠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에 대한 마음이 변하기 전에 찍기 위해’ 사전투표를 했다는 한 시민의 말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소신투표가 만들어낸 신(新) 정치풍조가 바로 ‘다당제(多黨制)’다. 다당제란 3개 이상의 정당이 존재하는 체제를 일컫는 말로써, 다양한 소수의견이 잘 반영되고 정당끼리 대립할 때 중재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정당이 난립할 경우 정치가 불안정하고, 능률적이고 일관적인 정책 수행이 어렵다는 것은 단점이다. 때문에 과거에는 정국 안정이 용이한 양당제가 가장 적절한 정당구조로 여겨졌다. 그러나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 다당제를 채택한 나라들에서 알 수 있듯, 다당제에서도 정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을뿐더러 다양한 소수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에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정치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도 이런 흐름은 잘 이해할 수 있다.

촛불민심의 적극적 지지 속에 치러진 이번 대선도 이런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기존의 양당제와 승자독식의 구태를 벗어나 여소야대 속 다당제 구조로 변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양당제로의 회귀를 갈구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통합정부론을 내세우며 국민의당과 정의당을 참여시키는 연정을 모색하고, 자유한국당은 강한 야당을 표방하며 바른정당을 흡수하는 방식의 보수통합을 꾀하고 있다. 또한 국민의당은 심각한 위기의식 속에서 당내 의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연대 또는 통합을 도모하며, 바른정당은 교섭단체 유지와 당의 재건을 위한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당장은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자강론을 내세우며 연정이나 통합론에 재갈을 물리기는 했으나 향후 그들만의 리그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 바른정당 원내·외 당협위원장들이 5월 16일 오전 강원 고성군 국회고성연수원 306호 중강의실에서 이틀째 19대 대선을 평가하는 연석회의를 갖고 바른정당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한 ‘바른정당 설악 결의문’을 결정, 발표하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선 패배 충격에 호남민심 이반까지, 위기의 국민의당
이번 대선의 후폭풍이 가장 큰 정당은 국민의당이다. 줄곧 2위를 수성했던 안철수 후보자는 최종 득표율 21.4%를 기록하며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게도 밀려 충격을 주었다. 이념적으로는 보수와 중도를,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영남을 공략하는 대선 전략을 구사한 것도 실패요인으로 꼽힌다. 애매모호한 정체성으로 인해 어느 쪽에서도 확실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막강한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지역에서조차 문재인 대통령에게 밀리면서 당의 존폐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때문에 대선 후 가장 먼저 연대와 통합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주승용 전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5월 12일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당의 외연도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혀 합당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주 전 대행은 “바른정당과 통합하게 된다면 60석 정도면 국회 내에서도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수 있고, 저희들이 국회 운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며 “민심은 통합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 개인적으로 선거 때도 안철수 후보에게 선거가 끝나면 통합을 하겠다는 선언을 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은지 건의드린 바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통합의 명분으로는 “(바른정당은) 국민의당과는 거의 정체성도 비슷하고, 열세 분이 빠져나간 뒤로는 더더군다나 정체성이 비슷한 부분이 많기에 그 분들과의 통합은 절실하지 않나 생각한다”며 “양당제의 폐해를 극복하는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바른정당과 합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호남에서도 그 진정성을 안다면, 그래서 견제와 균형을 달성한다는 측면에서 다당제의 진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실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역설했다.
주 전 대행에 이어 5월 16일 원내대표직에 선출된 김동철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도 “궁극적으로는 통합도 국민 여론이 동의해 주시고, 시대적인 상황이 맞다고 생각되면 그때 가서 추진해도 된다”라고 밝혀 향후 바른정당과의 통합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나 동교동계가 다수 포진한 국민의당의 상황을 고려할 때 당내 반발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박지원 전 대표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정체성은 다르다고 일축하며 야당으로서 연합, 연대는 가능할지 모르나 통합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아울러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른정당과 통합이 이뤄질 경우 호남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에는 더불어민주당의 ‘같은 뿌리’ 언급에 대한 맞불심리가 깔려있다.
김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창당 정신과 존재 이유마저 부정하는 패권주의의 발로”라고 일갈하며 “우리 국민의당은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서 싸워 막아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국민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 우원식(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5월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실을 찾아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자강론 내세운 바른정당 “개혁보수의 길 갈 것”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지난 대선 득표율은 6.76%였다. 대선 기간 내내 미미했던 지지율에 비하면 상당히 선전한 것으로, 당내에서도 나름 의미 있는 득표율이라는 평가다. 선거 막판 13명의 의원이 대거 탈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소신을 굽히지 않은 것이 국민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았고, 개혁보수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유 의원이 이끌어야할 바른정당의 운명은 아직 안개속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바른정당의 지지율로는 당의 존립 근거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향후 가속될 정계개편이나 정당체제 재편 속에서 교섭단체로서의 제 역할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또한 대선 직후부터 흘러나오는 국민의당이나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설은 더욱 당내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한다. 이에 당내 최대 지분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유 의원과 김무성 의원의 행보에 더욱 무게추가 실리고 있다.
대선 다음날인 지난 5월 10일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을 가진 자리에서 “선대위는 비록 해단을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고자했던 그 길로 가기 위한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백의종군 하면서 동지 여러분과 늘 함께할 생각”이라고 유 의원은 심중을 밝혔다.
이어 “우리가 새누리당을 나와 바른정당을 창당할 때 가졌던 초심을 그대로 가지면 앞으로의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같이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우리 당이 내년 지방선거, 3년 뒤 총선에서 기필코 승리해서 우리가 하고 싶었던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그날까지 열심히 뛰겠다”라고 밝히며 “대선후보로 나섰는데 선거에서 패배하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는데 기대만큼 못했으니까 당분간 평당원으로서 당이 더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당이 더 개혁적 보수의 길을 제대로 가서 국민들이 확신을 갖는 날이 올 때까지 노력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뒤이어 소감을 밝힌 김무성 의원은 “개혁이라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을 다 알지만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해 개혁적 보수의 길로 가서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5월 16일 강원 고성군 국회의정연수원에서 연찬회를 연 바른정당은 19대 대선에 나타난 민심과 향후 당의 진로를 모색하는 자유토론을 벌였다. 소속 의원들과 원외당협위원장들이 함께한 이날 공개발언에 나선 대다수 당원들은 자강론에 힘을 실었다. 이는 대선 직후 쇄도하는 통합론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결의문을 낭독한 주호영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번 대선은 바른정당이 가고자하는 개혁보수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열망을 보여준 선거였다. 바른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주신 소중한 희망의 불씨를 살려 국민을 위한 생활정당, 정책정당, 국민과 교감하는 소통정당, 청년의 미래를 책임지는 정당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어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한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 120석, 자유한국당 107석, 국민의당 40석, 바른정당 20석, 여당이 일을 하려고 해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힘을 모아줘야 180석이 돼서 국회선진화법상 쟁점법안 처리가 가능하다. 지금은 말만이 아닌 실질적인 협치가 꼭 필요한 시기”라고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여당이 설익은 정책이나 다듬어지지 않은 정책을 들이대며 무조건인 협치를 요구할 경우에는 꼭 짚어서 세금낭비가 없는 효과적인 정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경계의 말도 잊지 않았다.
 
   
▲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우원식 신임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5월 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20석 민주당, 피할 수 없는 야당과의 협치
이번 대선에서는 누가 당선이 되어도 여소야대 구도는 비껴갈 수 없는 명제였다. 때문에 야당과의 협치는 반드시 넘어야할 산이고, 개혁을 위한 험로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특히나 국정농단과 관련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과 청와대발(發) 개혁드라이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점에서 국정운영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하는 여당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당을 향한 여당의 구애의 손길도 분주하다. 대선 직후 난무했던 야당 후보들의 입각설이나 국민의당과 민주당은 ‘같은 뿌리’라는 당근책 등이 그러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원하는 정계개편의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과의 연정이나 통합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국회선진화법에서 요구하는 의결정족수 180석까지 채울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사안별로 정의당까지 합세한다면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여당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꿈일 가능성이 높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野) 3당 모두 ‘강력한 야당’을 표방하고 있으며, 바른정당이나 정의당의 경우는 강력한 정치적 이념과 소신으로 제 색깔마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폭넓은 협치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지난 5월 16일 신임 원내대표로 우원식 의원이 선출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의도 정가에서도 우 원내대표의 선출을 두고, 당내 계파 갈등을 극복하는 동시에 ‘탕평인사’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과 발을 맞춰야 한다는 당내 분위기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우 원내대표의 협상력도 익히 알려진 바다. 2000년대 초반 시민단체 활동을 거쳐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노동과 환경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협상으로 해결해온 자칭 협상의 달인이다.
“민주당과 민주주의, 민생을 제대로 살려야 되는 이 엄중한 시기에 일할 기회를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밝힌 우 원내대표는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있다면 야당의 어떤 정책도 과감히 수용하겠다. 100일 민생상황실과 개성공단 추진단을 만들고 일자리 100일 플랜에 집중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협상의 달인인 우 원내대표에게도 당면한 과제는 만만치 않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1공약이라 할 수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 창출을 위한 추가경정예산부터 야당의 공세에 부딪힐 전망이다. 10조 규모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 사안에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은 이미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자유한국당 정태옥 원내대변인은 16일 논평을 통해 “선의를 갖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좋은 취지지만 책임과 대책 없는 선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문재인식 정규직화는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 같다”라고 공격했으며, 같은 날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81만 개 공공 일자리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라고 밝혔다. 그나마 바른정당은 대통령의 공약이므로 어느 정도 기회를 줘야한다는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밖에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여야 간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정부조직법 개편안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준비해 국회에 제출하는 형식인데,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에는 50여일이 걸려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부조직법 개편안에는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외교부를 외교통상부로 개편, 해양경찰청·소방방재청 독립과 당선 후 민주당에서 요청한 정무장관 신설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6월 임시국회에서 어느 정도 협치가 가능할지는 지켜봐야할 일이다.
 
5월 29일부터 시작한 6월 임시국회는 추락한 국격을 바로세우는 첫걸음과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자기 당의 이익만 앞세우는 협치가 아니라 진정 국민을 앞세우는 진정한 협치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 모든 개혁입법을 다 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여당은 조금 더 설득하고, 야당은 조금 더 양보하며 ‘나라다운 나라’를 세워주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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