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위로 떠오른 의료사고, “수술 받기 무섭다”
위암환자, 갑상선환자 뒤바꿔 수술, 황당 의료사고 등 부주의로 인한 의료사고 빈번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환자가 바뀌면서 위암환자는 갑상선이 제거되고, 갑상선 환자는 위가 절제되는 의료사고가 발생했다. 12월 29일 건양대병원 의료진은 위암환자 박모 씨(여 63)와 갑상선환자 전모 씨(여 61)에 대해 엉뚱한 수술을 했던 것으로 지난 1월15일 밝혀졌다. 수술을 마친 건양대병원 의료진은 박 씨의 위장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갑상선의 절반을 제거한 사실을 알았다. 반면 전 씨의 멀쩡한 위장은 이미 3분의 1 정도가 절제된 상태였다. 병원 측은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는 도중 의료진이 환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차트(진료기록)를 바꾸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 같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에 다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전씨는 수술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식사도 제대로 못한 채 복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고병원 ‘최우수 병원’ 평가 받아
건양대 병원의 이영혁 원장은 “담당 의료진을 대상으로 과실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환자 가족과도 보상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의료전문가들은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가면 마취간호사, 마취의, 레지던트가 차례로 환자의 이름·나이 등을 확인하는 법”이라며 “이번 경우, 두 방을 합쳐 총 6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신원을 확인하지 않은 결과”라며 어이없어 했다. 병원 측은 “재수술을 통해 원래 문제였던 부위는 처리했다”며 “환자 및 가족과 구체적 보상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는 분야인 만큼 대형종합병원의 수술시스템과 각종 의료사고 사례 등 기본적인 데이터부터 수집, 분석중이다"고 말했다. 이번 의료사고의 피해자인 두 환자 가운데 멀쩡한 위를 잘라내야 했던 갑상선질환환자는 복통 등 후유증을 호소해 지금까지 퇴원하지 못하고 치료를 받고 있으나 병원을 상대로 고소장을 내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그러나 "의료진은 의료기록과 실제 환자를 직접 확인할 의무가 있는 만큼 업무상 과실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충분히 인지 수사할 수 있는 대상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건양대병원은 이번 의료사고와 관련 이영혁 병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를 열고 수술을 집도한 담당교수와 마취의, 간호사 등 수술진을 상대로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나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환자도 의사나 간호사들이 묻는 사항에 성실히 답하는 게 필요하다. 또 미심쩍을 때는 보호자 등이 다시 한번 확인해 봐야 한다.

사고병원 ‘최우수 병원’ 평가 받아
‘이런 황당한 의료사고를 저지른 병원이 지역 최우수병원이라니….’ 대전 건양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수술환자가 뒤바뀐 기막힌 의료사고에 대해 네티즌의 비난이 거세다. 특히 이 병원이 지난해 지역 최우수병원으로 평가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의 강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5월에도 안면부위 시술과 관련해 의료사고에 휘말린 전력 때문에 비난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듯하다.
환자의 차트가 뒤바뀌는 바람에 일어났다는 게 병원 측 해명이지만 마취 전에 환자의 인적사항만 제대로 확인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더욱 기막힌 일은 이 병원이 지난해 4월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대형 병원 평가에서 대전과 충청지역 최우수병원 평가를 받았다는 점. 당시 평가에서 건양대병원은 환자의 권리와 편의, 진료체계, 병동, 수술관리체계 등을 포함한 6개 항목에서 우수에 해당하는 평점인 A를 받았고 이어 B(양호)등급 8개, C(보통)등급 4개로 종합적으로 지역 최우수병원으로 평가받았다. D(미흡)등급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1년도 안돼 `지역 최우수병원`에서 이런 황당한 의료사고가 나자 네티즌을 비롯한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정부의 병원 평가기준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아이디 ju78ik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 잡는 병원이 됐다"며 "어떻게 최우수병원 평가를 받았는지 의심스럽다"고 강하게 비난했고, 아이디 sixman6666의 네티즌은 "육안으로도 확인이 가능했을 텐데 양쪽 다 멀쩡한 부위의 수술을 감행했다니 한심스럽다"며 "수술을 맡았던 의사는 의사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디 renew2005도 "의료진이 정신을 차리도록 이번 의료사고에 대해 일벌백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사고를 낸 병원 측이 오히려 실수를 은폐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아이디 maniluck는 "실수를 덮고 자꾸 축소하려고만 하는 병원 측의 의도가 있다"며 "이미지 실추가 문제가 아니라 병원 문 닫아야 할 부끄러운 사고"라고 비난했다.

부주의가 의료사고 불러
건양대병원 의료진이 위암환자와 갑상선환자를 바꿔 엉뚱한 수술을 한 경우처럼 수술환자가 뒤바뀌는 일은 흔치 않지만 타병원에서도 의료진의 부주의로 인해 의료사고가 발생하거나 환자 상태가 급속히 악화되는 사례는 많다.
지난 2003년 8월 소뇌출혈로 모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올해 1월 퇴원한 이모 씨는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를 교체하기 위해 빼는 과정에서 산소공급이 5분간 중단돼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의료진이 세심한 주의만 기울였어도 이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가족들의 주장이다. 또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지난 2004년 9월 폭행상해로 실려 온 20대 청년에 대해 병원 응급실에서 안면부 CT촬영을 내렸지만 누락됐다. 2주후 병원측이 퇴원해도 좋다는 말을 했으나 환자가 머리 통증과 눈의 이상을 호소하며 퇴원을 거부하자 그때서야 CT촬영이 누락된 사실을 알고 뒤늦게 CT촬영을 실시한 결과 눈 부위 골절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환자는 수술시기를 놓쳐 결국 실명하게 됐다.
충남 보령시에 거주하던 정모 씨는 동네 산부인과 의원을 다니다 임신중 자궁출혈 등으로 천안의 모 대학병원에 이송돼 지난 2004년 1월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했으나 병원에서 특별한 증상을 발견하지 못하다 한달 후인 2월에야 말기 자궁암인 것이 확인돼 결국 그해 11월 사망했다. 지난 2004년 모 산부인과에서 자궁근종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50대 환자도 퇴원 후 배가 너무 심하게 아파 병원진료를 받아보니 수술시 요관이 손상돼 신장기능을 일시적으로 상실, 재수술을 받는 경우도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모성형외과 의원에서 뱃살을 빼기 위해 지방흡입술을 받은 50대 주부가 수술 하루 만에 숨지는가 하면 모 안과의원에서는 사시수술을 받던 어린이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하는 등 환자 사망사고가 잇따랐다. 교통사고로 자궁이 기형인 산모가 제왕절개를 요구했으나 의사가 이를 묵살한 채 자연분만을 유도하다 결국 뒤늦게 제왕절개수술을 했으나 아이가 저산소증으로 뇌성마비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의료진이 환자에 대해 세심한 주의만 기울여도 의료사고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며 "일부의 경우 다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의료진의 어이없는 실수로 환자들이 상태를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국주부교실 대전시지부에 따르면 접수된 의료사고 분쟁건수는 지난 2002년 37건에서 2003년 71건, 2004년 105건으로 급증했으며, 지난해에도 80건에 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발생한 의료사고는 접수된 것보다 적어도 10배는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지난해 접수된 의료분쟁 건수(80건) 중 과목별로는 치과가 20건으로 가장 많고, 이어 산부인과 14건, 내과 10건, 성형외과 8건, 정형외과·일반외과·응급의학과 각각 4건, 피부과 3건, 소아과·이비인후과·한의원 2건, 가정의학과·신경정신과·비뇨기과 각각 1건, 기타 4건이다. 의료분쟁원인은 치료시술 불만이 22건(27.5%)으로 가장 많고 이어 의료인의 주의의무 소홀 16건(20%), 진료비 과다청구·불친절·의료제도 불만 등이 15건(18.8%), 부작용 10건(12.5%), 상담 6건(7.5%), 과잉진료 5건(6.3%), 설명부족 5건(6.3%), 치료 및 시술지연 1건(1.3%) 순이다.

의학계 “다시 일어나선 안될 일” 성토
대학병원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같은 사건이 우리병원에서 발생하면 큰일”, “남일 같지 않다”라며 수술환자의 차트를 평소보다 꼼꼼히 살피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술전 의료진이 환자의 성명과 병명 등 직접 확인절차 없이 차트만 보고 환자를 확인해온 관행에서 벗어나 환자들을 꼼꼼히 확인에 나서는 등 변화된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히 대학병원 교수와 개원의들은 위암환자의 갑상선이 제거되고, 갑상선 환자는 위가 절제되는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 “두 수술실에서 의료진중 1명이라도 환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했어도 이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충남대병원 J교수는 “환자를 바꿔 수술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든 변명의 여지가 없다”며 “환자를 수술방에 옮기면서 수술실 간호사에게 환자와 차트를 인계하는 과정뿐 아니라 마취전 마취과 의사와 수술담당의사도 환자확인을 소홀히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P교수는 “이번 의료사고는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사고가 일어난 것으로 변명의 여지가 전혀 없다”며 “단 한명이라도 신경을 썼으면 차트가 뒤바뀐 것을 알았을 텐데 ‘도둑이 들려면 X도 안 짖는다’는 말처럼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속수무책 이였던 것같다”고 말했다. 모 외과의원 K원장(외과전문의)도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바꿔 수술한 것은 정말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며 “주의의무 규정만 제대로 지켰어도 이같은 엄청난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내과 전문의들은 “멀쩡한 위가 잘려나간 경우 위 용량이 감소한 탓에 소화효소를 분비하는 부위가 적어져 소화불량을 앓을 수 있고 잘라낸 부위에 위궤양이 생길 우려도 높은 만큼 평생 조심해가며 자주 소식(小食)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전문의들은 또한 “멀쩡한 갑상선이 제거된 경우도 평생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게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병원 오진·의료사고 공개
앞으로 특정 의료기관의 오진이나 의료사고 등에 대한 자료가 국민에게 공개되는 등 의료기관 평가제도가 크게 개선된다. 또 병원과 의사에 대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제공에 대해서도 연구비 지원 성격이 있을 경우 기부로 인정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대통령 직속 보건의료서비스제도개선소위는 1월 12일 4차 회의를 열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 공급을 위해 의료산업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보건의료서비스 제도개선 작업에 본격 착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제도개선소위는 의료서비스의 질 개선을 위해 이르면 올 상반기 중에 의료기관 평가에 대한 추가적인 지침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술 후 사망률과 오진율 등 개별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각종 의료사고를 국민에게 공개키로 했다. 병원과 의사에 대한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제공에 대해서도 연구비 지원 성격이 있을 경우 기부로 인정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그러나 리베이트 제도를 활성화할 경우 병원 회계가 불투명해질 수 있는 데다 의약품 과잉공급과 진료비 인상 등이 뒤따를 것으로 보여 논란이 예상된다.
제도개선소위는 또 300병상 이하의 적자경영에 시달리는 병원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병원에 대해 합병이나 청산을 허용키로 했다. 현행 의료법에는 비영리 의료법인이 해산할 경우 모든 자산이 국고로 귀속돼 병원 운영자들이 경영난을 겪더라도 법인 청산을 꺼린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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