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 정책에 성난 그리스인들, ‘제국주의자’칭하며 대규모 항의 시위

그리스가 총성 없는 전쟁터로 변했다. 10월18일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전국적으로 24시간 총파업에 들어갔으며, 긴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수만 명이 운집한 이 날 시위는 청년시위자들이 진압에 나선 경찰들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60대 남자가 경찰과 충돌,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긴축안 놓고 정부와 시민들 간 팽팽한 줄다리기
그리스 정부가 구제금융 지원조건으로 2차 긴축안을 준비하자 이를 반대하는 총파업이 10월18일(현지시간) 그리스 전역에서 벌어졌다. 특히 이번 파업에는 의사와 교사들은 물론 택시기사와 공항 관제요원 등도 참여해 그리스 도시가 마비되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현재 그리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집행위원회, 유럽중앙은행(ECB) 등에 315억 유로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임금과 연금 삭감 등 을 골자로 하는 135억 유로(미화 177억 달러) 규모의 긴축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총파업을 선언하며 긴축안 반대 시위에 나선 그리스인들은 “5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경기침와 25%에 이르는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추가 긴축안을 내놓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 하겠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한편, 카롤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과 안토니오 사라마스 총리의 요청으로 5년 여 만에 그리스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환영 대신 성난 그리스인들의 원망만 들어야 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9일 아테네에 도착해 6시간의 짧은 일정을 소화했지만 그리스인들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이날 아테네에 모인 2만 5,000여 명의 그리스인들은 “환영받지 못하는 제국주의자여 떠나라”라고 외쳤는가 하면 히틀러 치하의 독일인 ‘제3제국’을 빗대“제4제국 복귀에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깃발을 휘두르고, 나치 깃발을 불태우기도 했다. 대규모 시위가 연이어 발생하자 그리스 당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전날부터 비상체제에 돌입하며 7,000여명의 사복 경찰을 시내에 배치하고 저격수 등 특수병력도 투입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환영받지 못한 방문이었지만 메르켈 총리는 “긴축이라는 ‘고난의 길(tough path)’에 대해 결국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그리스 국민들을 위로했다. 메르켈은 사마라스 총리와 만남을 가진 후 기자회견을 통해 “고난의 길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한다. 독일은 그리스의 우호적인 파트너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많은 일들이 이뤄졌지만 아직 할 일이 산적했고 독일과 그리스는 긴밀히 공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기나긴 길이 되겠지만 터널의 끝에 빛을 볼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사마라스 그리스 총리는“그리스는 위기를 이겨낼 확고한 의지가 있다. 그리스 국민들이 당장 지금은 피를 흘리지만 경쟁적 전쟁터에서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그리스가 마련한 재정 긴축 및 개혁안에 대체로 합의함으로써 그리스에 대한 2차 구제금융 차기분 집행이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슈피겔은“독일이 그리스의 유로존 잔류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면서“그리스에 구제금융 차기분을 제공하면서 그리스에 대한 고삐를 더욱 강하게 잡으려 한다”고 분석했다. 그리스는 이번에 구제금융을 받지 못하면 11월경 재정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낼 위기에 직면했다.

인간 한계에 도전, 성층권에서 자유낙하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인간의 우주낙하가 성공했다. 10월14일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인 펠릭스 바움가르트너는 지상 38.6㎞ 성층권 상공서 자유낙하로 지상에 무사귀환 하는데 성공한 것. 이 날 바움가르트너는 지구에서 낙하를 위한 캡슐형 옷을 입고 특수 제작된 헬륨이 든 초박형 폴리에틸렌 풍선을 타고 2시간30분 동안 지상 38.6㎞ 높이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미국 뉴멕시코 로즈웰의 상공으로 올라간 그는 초음속 자유낙하를 통해 4분19초 만에 지상에 무사히 도착했다. 바움가르트너는 헬멧과 압력저항복, 산소부족을 방지해 줄 기기들을 착용하고 자유낙하를 했다. 국제항공연맹은 그의 자유낙하 기록을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의 가슴에 장치를 부착했다. 여기에는 GPS추적기기, 관성측정장치, HD카메라, 음성전달기와 수신기가 탑재됐으며, 압력복에도 5대의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당초 그는 8일 자유낙하를 도전했으나 기상여건 때문에 다음날로 미룬바 있다. 하지만 이튿날에도 강풍 때문에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낙하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성층권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를 도울 55층 건물 높이의 이 헬륨기구는 극도로 얇은 재질로 만들어져 기상여건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헬륨기구는 풍속이 시속 3.2km 이하일 때만 상공에 뜰 수 있다. 1990년대부터 건물, 안테나, 다리, 절벽, 산 등 고정된 사물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는 베이스 점핑으로 낙하를 도전해온 바움가르트너는 종목을 바꿔 자유 낙하 기록에 도전, 1999년에는 세계 최고층 건물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에서 뛰어내리며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세계 최고층 건물이 대만의 타이페이 101로 바뀌자 또 다시 2007년 도전, 여기서도 뛰어내렸다.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성공한 바움가르트너는 “세상의 꼭대기에 서서 인간이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가를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환갑 맞은 푸틴을 향한 도 넘은 축하 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0월7일(현지시간) 환갑을 맞았다. 당사자는 조용히 가족, 지인들과 60회 생일을 기념했으나 주변에서 용비어천가 수준의 축하를 쏟아부어 눈살을 찌푸리는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특별한 행사 없이 고향인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가족 및 가까운 친인척들과 조촐하게 60회 생일을 기념했다. 알려진 것이라고는 푸틴의 오랜 정치적 동지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이날 전화로 대통령의 60회 생일 축하인사를 전하고, 1910년에 발간된 고서(古書)를 선물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주변과 측근들은 별다른 이벤트 없이 자신의 생일을 보내는 푸틴과 달리 요란했다. 우선 친 정부 정치인들은 대통령의 60회 생일을 맞아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찬사를 쏟아내길 멈추지 않았다. 세르게이 나리슈킨 하원 의장은 “푸틴은 변혁기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이자 지도자”라며 “국내외 모든 지도자가 본받아야 할 높은 전문가적 자질과 업무 능력을 보여줬다”고 푸틴을 추켜세웠다. 안드레이 보로비요프 통합 러시아당 하원 원내 대표는“푸틴 대통령은 국익을 향한 야심차고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된 팀의 진정한 지도자”라고 칭송하면서“과업을 끝까지 밀고 나가기 위해 무한한 에너지와 정열을 유지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칭송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원의장은 “2000년대 초반 푸틴이 인수한 러시아는 재앙의 언저리에 놓여 있던 나라였지만 지금의 러시아는 가장 엄격한 국제적 기준을 들이대더라도 훌륭한 국가가 됐다”며 “세계 역사에서 이런 성과를 낸 지도자는 많지 않다. 푸틴의 비판자들이 무슨 말을 하던 러시아의 국가정치시스템은 민주화의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인들뿐 아니라 청년단체인 나슈 회원들도 자체 사이트에 “강하고 정열적인 지도자인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을 환영하며 그가 나라를 위해 4기 집권에도 나서줄 것으로 믿는다”는 글을 올리며 푸틴의 60회 생일을 축하했다. 푸틴의 생일 아침에는 크렘린궁 맞은편 아파트에는 색안경을 끼고 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푸틴의 초상을 담은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가 40분 만에 철거되는 소동도 일어났다. 이 플래카드 안에는‘당신이 권력을 잡아서 좋다. 생일을 축하한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런가 하면 푸틴의 고향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시정부가 발간하는 신문이 7일자 신문 전체를 푸틴의 60회 생일 특집 기사로 도배했다. 모스크바의 한 미술센터에서는 ‘대통령, 가장 친절한 영혼을 가진 남자’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세력의 축하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푸틴의 장기집권을 비판하는 시위로 생일 축하를 대신했다. “푸틴이 이제는 은퇴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 반정부 시위대들은 푸틴을 조롱하는 선물을 크렘린궁 앞에 갖고 나와 반대 시위를 벌이다가 폭력 시위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레닌도 52세에는 할아버지라고 불렸다”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할아버지가 은퇴할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반대세력들은 모스크바에서 검은 리본이 달린 푸틴의 초상화를 들고 시위를 하는 등 푸틴의 60회 생일은 칭송과 시위라는 극과 극의 축하가 이루어졌다.

차베스 4선 성공, 20년 장기 집권 예정
대표적인 중남미 좌파 지도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4선 연임에 성공, 2019년까지 대통력직을 수행하게 됐다. 이번 연임으로 그는 총 20년 간 장기집권하게 됐다. 지난 10월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 대통령은 54.42%의 득표율을 기록해 44.47%를 얻은 야권 통합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를 제치고 당선됐다. 14년째 집권 중이었던 차베스 대통령은 내년 1월10일 재취임해 6년 간 더 베네수엘라를 이끌게 된다. 선거위원장이 선거 결과를 발표하자 차베스의 대통령궁이 위치한 수도 카라카스 구 도심지역에서는 축포가 터지는 등 4선 달성에 환호했다. 선거에서 패배한 카프릴레스 후보는 선관위 발표 뒤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결과에 승복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차베스 4선 성공은 빈민층의 지지로 이뤄졌다. 군인 출신인 차베스는 지난 1998년 대통령이 된 후 강력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빈민층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차베스 대통령의 4선에 성공한 이유를 석유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국제 원유가 상승으로 수익이 높아져 최근 의료보험과 교육 등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확대했기 때문이다. 한편, 차베스의 연임 성공으로 전문직 종사자의 엑소더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0일 보도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의 한 외과전문의는“이민을 준비 중”이라면서 “떠나고 싶지 않지만 내 직업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지난 8월 차베스가 병원에 대한국가 통제를 확대하고 의사 월급을 규제하겠다고 밝힌 데에 따른 것이다. 그는 지난 1998년 처음 대통령이 된 후 1,000곳 이상의 기업을 국유화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 이민 정보 사이트의 방문자수가 차베스가 당선 후 평소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또한 블룸버그통신은“차베스 당선 후 베네수엘라의 채권 값은 크게 하락했다면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외국인투자는 지난 2006년부터 2011년 사이 58% 감소했으며 차베스 연임으로 외국인 투자가 사실상 동결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의 외교적 대립도 우려되고 있다. 대표적인 남미의 좌파 정치인인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2006년 유엔총회에서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로 비유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과의 관계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로스레티넨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8일 성명을 통해 “차베스가 권력을 잡으려고 자신의 입맛대로 투표를 조작했다”고 맹비난하며“그가 이란과 쿠바의 독재자들처럼 자신의 증오와 폭정을 계속 국외로 전파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마지막 총각 왕세자, 드디어 품절남 되다
유럽의 왕세자들 중 유일한 총각이었던 룩셈부르크 기욤장 조세프 마리 왕세자가 결혼하면서 모든 왕세자들이 품절됐다. 10월19일 결혼식을 올린 기욤 왕세자의 결혼은 영국의 윌리엄-케이트 왕세손 부부에 이은 또 하나의 로열패밀리 탄생이다. 그의 반려자는 벨기에 백작가문의 스테파니 데라노이. 이들의 결혼식은 로열 커플의 탄생을 축하하듯 유럽 각국의 왕족들이 대거 참석했다.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왕자와 소피 왕자비가 참석했으며, 벨기에에서는 알버트 2세 국왕과 파올라 왕비가 첨석했다. 이 밖에도 스웨덴, 덴마크의 왕가들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룩셈부르크를 찾았다.
결혼식은 이틀간 거행됐다. 19일 첫날에는 시청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약식 예식을 진행했고, 다음날에는 룩셈부르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종교 결혼식이 거행됐다. 왕세자 부부의 결혼식을 맞아 불꽃놀이 등 시민을 위한 축제 한마당도 펼쳐졌다. 한편, 이번 결혼식은 유럽 경제 위기를 고려해 왕가의 결혼식에 비해 다소 낮은 예산으로 진행됐다. 현지 언론은 “룩셈부르크 왕실이 유럽 경제 위기를 감안해 다른 국가의 왕실 결혼식보다 낮은 66만 7,000유로(약 9억 6,000만 원)를 결혼식 비용으로 들였다”고 보도했다. 이 날 신부가 입은 드레스는 3,200시간 동안 수를 놓아 완성했으며, 26명의 플로리스트 들이 장미 3,000송이와 500그루의 식물들로 노트르담 성당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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