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없으면 경쟁업체라 해도 안내해준다’는 고객의 만족 응대 방식

2009년 7월 미국 경제계에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온라인 상거래의 절대강자 아마존(Amazon)이 자포스(Zappos)를 인수했다는 것. 그러나 정작 사람들이 놀란 것은 인수 자체가 아니었다. 그보다 아마존이 자포스를 인수하기 위해 투자한 12억 달러라는 액수에 사람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는 아마존이 지금껏 했던 인수합병 중 최고의 액수였다. 그렇다면 자포스의 무엇이 아마존을 매혹시킨 것일까. 게다가 아마존이 자포스의 독자경영까지 약속했다고 알려져 그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한 여성이 몸이 아픈 어머니를 위해 자포스에서 신발을 구입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얼마 뒤, 뒷정리로 분주한 그녀에게 이메일이 한 통 날아왔다. 판매업체쪽에서 구입한 신발이 잘 맞는지, 마음에 드는지 묻기 위해 보낸 메일이었다. 상실감에 빠져 있던 그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답장을 썼다. “병든 어머니에게 드리기 위해 구두를 샀던 것인데 어머니가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구두를 반품할 기회를 놓쳐버렸네요. 그렇지만 이제 어머니가 안 계시니 이 구두를 반품하고 싶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요?” 그러자 곧바로 업체에서 답장을 보내왔다. “저희가 택배 직원을 댁으로 보내 반품 처리를 해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사례는 이시즈카 시노부가 지은 ‘아마존은 왜? 최고가에 자포스를 인수했나’라는 책에 담긴 내용이다. 이 책에 따르면 자포스는 반품할 경우에 요금은 무료지만 고객이 직접 택배를 불러 물건을 보내야 하는 것이 기본 정책이다. 그러나 자포스는 고객을 위해 정책을 어기면서까지 직접 택배 직원을 보내 물건을 반품하도록 조치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날 이 여성에게 한 다발의 꽃이 배달됐다. 꽃과 함께 배달된 카드에는 어머니를 잃고 슬픔에 빠진 여성을 위로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꽃다발과 카드는 자포스에서 보낸 것이었다. 이 여성이 받았을 감동은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터. 여성은 “감동 때문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받아본 친절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었습니다. 혹시 인터넷에서 신발을 사려고 하신다면 자포스를 적극 추천합니다”라며 자신이 감동받은 사연을 전했다.

아마존에 인수, 자포스 정신 약속 받은 ‘합리적 결혼’

자포스가 아마존에 매각하기로 합의했을 때 자포스의 CEO인 토니 셰이(Tony Hsieh)는 언론에 인수합병 소식이 보도되기 전, 이 소식을 이메일을 통해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 그는 언론 보도에는 재무적인 내용만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해 직원들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먼저 전했다. 이는 토니 셰이가 직원들과의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며 실천해 왔는지, 또 그동안 어떻게 건강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왔는지 알려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그는 100만 명이 넘는 트위터 팔로워들에게도 관련 소식을 전했다. 이때 토니 셰이는 “자포스가 아마존에 합병되는 것이 아니라 자포스의 기업 문화와 고용, 독자적인 경영 방식을 100% 그대로 승계할 수 있도록 약속 받은 ‘합리적 결혼’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자포스의 기업문화는 아마존이 사상 최대의 금액을 지불해가며 자포스를 인수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수 선언 당시 전문가들은 “아마존이 드디어 자포스의 탁월한 통찰력과 예지력을 갖게 됐다”면서 아마존 CEO를 추켜세웠다. 통상적으로 ‘거대 공룡이 약자를 집어삼켰다’고 반응하는 것과 달리 이 경우 오히려 아마존보다 자포스의 가치를 더 크게 평가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자포스는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기업이지만 포춘 선정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글로벌 금융위기였던 2008년에도 1,300%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보였다.

기업의 사명은 고객과 직원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것

1999년 설립된 자포스는 미국의 온라인 신발·의류 판매회사다. 특히 신발 판매는 미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설립 이듬해 160만 달러(18억 원)에 불과했던 자포스의 매출은 연평균 100%씩 증가했으며, 그 결과 설립 10년 만에 12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자포스는 스스로를 ‘최고의 온라인 판매 기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자포스가 ‘최고의 서비스 기업’이라는 자부심이다.
1973년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대만 유학생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토니 셰이는 하버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오라클에 입사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자신의 열정을 찾지 못해 사표를 내던진 그는 1996년 대학 룸메이트와 ‘링크익스체인지’라는 인터넷 광고 판매 회사를 창업해 큰돈을 벌었다. 2년 만에 직원 100명 규모로 성장한 회사는 2억 6,500만 달러에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됐다.

그가 회사를 넘긴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급성장’이었다. 짧은 시간에 성장한 탓에 직원이 갑작스레 늘게 됐는데, 그의 눈에 비친 새로 입사한 직원들은 일에 대한 열정보다 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였던 것. 이렇다보니 기업의 문화는 온데간데없고, 직원들은 일을 일로만 받아들여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이에 토니 셰이는 회사를 넘기고 다시 사업을 하게 된다면 직원들이 매일 출근하고 싶은 즐거운 직장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가 추구하는 기업의 사명은 고객과 직원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자포스다.
자포스는 직원에게 건강보험, 생명보험은 물론 치과·정신과 치료에 무료 법률 상담까지 제공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 같은 복지보다 자유분방한 기업 문화에 더 큰 환호를 보낸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자포스 본사 사무실은 색종이로 만든 장식과 각종 장난감,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 등이 사방에 걸려 있다. 천장에는 직원들의 이름이 매달려 있다. 놀이동산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흥미롭다. 심지어 홈페이지 관리팀은 거대한 종이상자로 만든 자동차 안에서 일을 한다. 물류 창고 곳곳에 걸려 있는 모니터에는 새로 입사한 직원들의 사진과 이름이 떠 있고, 이 컴퓨터에 로그인하려면 다른 직원의 사진을 보고 이름을 맞춰야 한다.
자포스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 하루 200명의 방문객들이 본사를 찾는다. 견학 차원이다. 자포스 본사 견학은 라스베이거스 관광 소개 자료에 올라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이 견학은 협력회사 직원들이 자포스의 기업문화를 접하면서 입소문이 나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후 견학 요청이 많아져 아예 견학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직원, 협력회사, 고객 모두가 자포스에 열광

처음부터 자포스가 성공을 예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신발은 직접 신어보고 구입해야 하는 상품이지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고 사람의 발 모양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니 셰이는 실패의 요인이 될 수 있는 이 점에서 성공의 기회를 찾았다.
1999년 토니 셰이는 오프라인 매장에서조차 마음에 드는 신발을 사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됐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사이즈가 없고, 사이즈가 있으면 원하는 색이 없는 등 원하는 신발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착안, ‘원하는 신발을 집으로 배달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에 토니 셰이는 온라인 신발 쇼핑몰에 50만 달러(약 5억 6,000만 원)을 투자하면서 온라인 신발 판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쇼핑몰 이름은 자포스. 스페인어로 신발을 뜻하는 ‘사파토스(zapatos)’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자포스는 무엇이 다를까. 무엇이 다르기에 직원, 협력회사, 경영·경제전문가, 고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포스에 열광하는 것일까.

자포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365일, 24시간 사람이 응답한다. 물류센터도 24시간 가동된다. 그렇기 때문에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의 전역에서는 주문한 상품을 다음날 받아볼 수 있다. 게다가 모든 상품의 배송비가 무료다. 반품 배송비 역시 자포스가 부담한다. 반품을 원하는 고객은 구입 후 365일 내에 반품만 하면 된다. 앵무새처럼 대답하는 고객 응대 매뉴얼도 없다. 직원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상담한다. 몇 시간씩 고객과 통화해도 뭐라고 하는 이가 없다. 중요한 것은 ‘고객이 만족했는가’다.
24시간 풀가동 되는 콜센터에 대해 토니 셰이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홈페이지에 문의 전화번호조차 쉽게 찾을 수 없도록 해놓고 있다. 소비자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은 게시판 또는 이메일 주소뿐이다. 우리 자포스는 이와 반대의 방법을 택했다. 문의 전화번호를 홈페이지 맨 위에 올려놓았다. 전화야 말로 최고의 브랜드를 구축하는 도구라고 믿기 때문이다. 통화하는 5∼10분이야말로 고객의 주의와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최소 세군데 이상의 경쟁업체 웹사이트를 검색하도록 교육한다는 사실. 이는 고객이 원하는 신발이 자포스에 없을 경우 경쟁업체라 해도 그쪽에 상품이 있으면 안내해주는 자포스만의 고객 응대 방식이다. 얼핏 고개를 갸웃거릴만한 방법이지만 토니 셰이의 생각은 다르다. “물론 경쟁업체를 안내해줌으로 우리는 판매 기회를 잃게 된다. 우리는 모든 거래에서 이윤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목표는 전화 한통을 통해 고객과 평생을 유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고객이 전화를 걸었을 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전화를 통한 매출은 약 5%에 불과하다. 자포스는 5%의 매출 보다 전화 한 통으로 맺어지는 가망고객과의 시작점을 선택하는 셈이다.
“가격 경쟁력만 보고 오는 고객들은 결국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우리가 평생의 인연을 중요시하는 것은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입소문을 통해 고객들의 충성심이 커지고 이에 따라 회사도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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