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을 만나고 싶으면 ‘역술원’을 찾아라
우리 정치인들은 점집을 자주 찾는다. 정계뿐만 아니라 재계 거물급 인사도 마찬가지.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당장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이고 그 어느 추리소설보다 더 미스터리하고 그 어떤 드라마보다 모략과 중상이 가득한 풍토에서 자신의 실력과 이성만 믿기는 힘들어 그런 곳을 찾는지 모른다.

명예퇴직해서 사업을 해볼까 구상 중인 회사원 김모씨(40)는 용하다는 역술인 집을 찾았다.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 또 어떤 분야의 일을 하는 것이 좋을지 궁금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역술인의 점괘가 아니라 방에 놓인 축하 화분들. 주요단체 창립기념회에서나 봄직한 주요 정치인, 장관, 기업인들의 이름이 쓰인 화분이 방안 가득했다.
“얼마 전에 내 생일이었는데 조용히 보내겠다고 했는데도 다들 저렇게 화분을 보냈어. 저이들은 자주는 아니지만 궁금한 일 있을 때마다 오는 분들이지. 나야 뭐 그냥 보이는 대로 말해주는 건데 고마워 하더라구. 장·차관 이 취임식 날에는 더 복잡해. 들어온 화분을 고맙다고 내게 다시 보내주거든” 김씨는 저명 정치인들의 이름에 기가 죽어서 그 역술인의 말에 신뢰감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업운이 없으니 직장생활에나 충실 하라’는 조언대로 당분간 회사에 꾹 눌러 있기로 결심했단다.

국회 방불케 하는 역술인 사무실
국내외로 이름이 알려진 유명 목사 역시 전속 무당이 있다는 믿기 힘든 소문도 떠돈다. 그러나 요즘은 정치인과 그 측근들의 점이나 역술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심해졌다. 본인이나 측근이 수시로 단골 점집을 드나드는가 하면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돈을 들여 관운이 좋아지는 굿을 하거나 부적을 써서 갖고 다니는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홍석현씨가 주미대사로 발령을 받았을 때 이런 소문이 떠돌았다. “평소 홍 회장이 역학에 관심이 많은데 측근 및 몇몇 역술인들이 ‘글로벌시대에 대통령이 될 상이라며 미국대사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서 (주미대사) 제안을 받아들였다”란 줄거리다. 만약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그 역술인은 폐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정몽헌 회장을 자살케 한 대북지원금 관련 사건이 터졌을 때 검찰이 추적·확인한 결과 몇몇 기자와 역술인에게 지원금 수표 몇 장이 흘러들어간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검찰조사를 받은 그 역술인은 단골에게서 복채로 받았다고 했단다. 주위에선 그 수표는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사랑하는 심복이자 ‘국민의 정부’의 실세였던 P씨의 측근이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고 권력을 누리고도 항상 자신과 나라의 미래를 궁금해 하며 부지런히 측근을 점집에 보냈나보다.
서울 강남의 한 역술인 사무실은 국회를 방불케 한다.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원들, 정치인들이 찾아들기 때문이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예약한 손님만 받으며 때론 출장 상담도 한다. 복채 단위도 다르다. 일반인들은 한 사람이 보는데 5만원 정도지만 그런 정치인들은 알아서 낸다.
그 역술인과 얼마 전 저녁식사를 했다는 한 기업인은 “우연히 식당에서 당 대표를 지낸 유명정치인을 만났는데 한참 어린 그 역술인에게 ‘선생님’이라면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그 역술인은 태연히 반말을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분은 워낙 많은 정치인을 알고 있어서 국내 정보는 물론 외교정보도 많고 정세를 파악하는 능력도 뛰어납니다. ‘모 의원은 운이 아주 약한데 100일 기도를 해줘서 지난 보궐선거에 억지로 당선시켰다’고 자랑하더군요. 밥먹는 중에도 수시로 정치인들의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자가용도 최고급수입차를 타고 명품 시계를 차고 있는데 모두 단골들에게 선물 받았다고 합디다”
지난해, 한 인상학 전문가의 출판 기념회에는 많은 정치인과 주요 언론사 간부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평소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깊고 경영인들의 모임에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인상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주씨에게 모여드는 정치인이 알고자 하는 것은 학문적 깊이가 아니라 ‘내가 대통령이 될 상인가, 혹은 장관이라도 될 관상인가’에 대한 궁금증일 것이다. 그의 책에도 주요 언론사 간부들이 다투어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내가 대통령 성형수술 권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역학원을 하는 백모씨(여)는 “정치인들은 자신보다 측근들이 더 많이 찾아 온다”면서 “어느 때는 비슷한 시기에 찾아온 10여 명이 똑같은 사람의 사주를 들이대서 내가 놀라기도 했다”고 전한다.
“주역은 통계학이어서 족집게처럼 집어내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대표적인 특징들을 파악·분석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주라 해도 관운이 없으면 절대 정치를 하거나 국회의원, 장관직에 오르지 못하죠. 그런데 예전엔 자신들만 봤는데 요즘은 선배, 라이벌 등등의 사주까지 다 봐서 거의 전략을 짜더군요. 어떻게 생년월일시를 다 알아내는지 신기해요”
몇몇 역학·점술인들의 ‘자작극’(?)이나 주변 사람들의 부풀린 말도 엉뚱한 소문을 만들어낸다.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상안검 절제수술을 하자 갑자기 ‘내가 시켜서 대통령이 성형수술을 했다’고 주장하는 역학·점술인들이 숱하게 나타났다. 수출업을 하는 정진수씨는 취미삼아 점을 보는데 4, 5명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모두가 노 대통령이 사고수가 있어서 그걸 예방하거나 액땜을 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라고 자신이 권했다는 거예요. 처음에 한 무속인이 그런 말을 했을 때는 ‘아, 그렇구나’ 했는데 가는 곳마다 ‘청와대 직원이 와서 보고 갔다’ ‘노 대통령의 친구가 대신보고 갔다’ 등등 이야기를 하기에 자신들의 신뢰도를 높이고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판다는 의심이 들더군요” 김일성의 사망을 예언해 화제가 되었던 한 무속인은 ‘주변 사람들이 많이 문의하지만 꼭 본인이 와야 봐준다’고 한다. “요즘 정치인들은 자기 운세보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를 더 많이 물어요. 대권주자 가운에 확실한 사람을 정해 그 줄에 서려는 거겠지요. 그게 가장 확실한 보험이고 투자일 테니까. 그런데 정말 주제파악을 못하는 이도 참 많죠. 그릇이 안 되는데 욕심을 부리는 이도 많습니다”
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자신의 철학과 소신대로 정치를 하지 않고 이렇게 역학·점술인들에게 의존하며 생일선물까지 챙기는 ‘단골손님’이 될까. 또 로또복권을 사듯, 점술인이 찍어준(?) 대권주자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수준이 이토록 한심한가보다.

점에 의존하는 정·재계 유력인사들
정계뿐 아니라 재계 유력 인사들도 적잖이 무속, 역술에 의존한다. 이들의 접근은 아주 은밀하다. 신분 공개를 꺼려 당사자가 직접 나서기보다 친인척이나 측근들을 이용해 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사주만 집어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주 특별한 사안은 영험한 무속인이나 역술인을 집안으로 불러들이기도 한다.
정치권 최대의 얘깃거리는 경북 봉화 현불사 설송 스님(불승종 종조)과 여야 대권주자들의 관계다. 설송 스님이 지난 96년 10월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예견했다. 그 뒤 내로라하는 여야 정치인들이 ‘천기’를 엿보기 위해 줄을 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에서는 정치권의 한화갑, 김중권, 이수성, 이기택 등 중진들은 물론 이회창 총재의 부인 한인옥씨와 이인제 민주당 상임고문의 부인 김은숙씨까지도 그를 만났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특히 독자적인 대권 행보를 계속하는 한화갑 상임고문과의 관계는 각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설송 스님은 한 고문 후원회에 직접 얼굴을 내비쳤다. 한 고문의 강력한 대권 드라이브도 설송 스님이 ‘천기’를 일러줬기 때문이라는 뒷말이 나돈다.
이인제 고문이 사망한 모친 산소를 풍수지리에 능한 진허 스님으로부터 점지 받은 것을 두고도 대권을 얻기 위해 ‘비기’를 쓴 게 아니냐는 추측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 대권향배에 상당한 예측력을 발휘해온 것으로 평가받는 한 무속인은 “지난 2002년 대선 때 내로라하는 대통령 후보들의 참모나 친인척들이 앞다퉈 찾아와 천기를 묻고 축원기도를 해달라고 부탁했었다”고 말했다. 이 무속인은 “요즘도 대권에 관심 있는 분들은 자기를 위해 기도하고 운을 점치는 사람 몇 명 정도씩은 다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제계도 역술의 무풍지대일 수는 없다. 특히 대기업의 오너들은 보이지 않게 무속인이나 역술인을 찾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작고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후계구도를 둘러싼 ‘왕자의 난’ 때 이야기. 정몽헌 현대 경영자협의회 회장과 정몽구 현재자동차 회장이 현대의 경영권 승계를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던 때, 경제인의 미래 예견에 일가견이 있다는 한 역술인은 수세에 몰린 몽구 회장쪽 측근 인사의 방문을 받았다. 이 역술인은 “7월까지만 버텨라. 그러면 길이 보일 운세다”라고 조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예측은 결과적으로 적중했다. 당시 세 싸움에서 밀린 것처럼 보였던 몽구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현대자동차가 잘 풀려나가기 시작하면서 재계에 우뚝 서게 됐다. 반대로 현대자동차가 떨어져나온 현대그룹은 경영난으로 사분오열됐다. 왕자의 난에서 한발 밀렸던 몽구 회장이 사실상 정주영 명예회장의 대통을 잇게 된 것이다.


재벌가와 중소기업가의 차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여류 무속인은 특정 재벌가로 불려갔던 경험을 얘기했다. “2000년 무렵이다. 당시 그 재벌가에서 몰래 사람을 보냈다. 한번 와보라고. 회장과 그 부인 등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그 집안 모든 자손들의 사진과 사주를 내놓고 ‘우리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오겠느냐’고 물었다. 적당히 한 사람만 집어주면 한몫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이 내린 점괘를 보는 사람은 재물을 탐하면 신기가 흐려진다. 거짓말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있기는 어디 있냐’고 바른 말을 했다. 결국 복채도 못 받고 쫓겨나다시피 그 집을 나왔다.”
역술인들은 재벌가와 중소 개인사업가들 사이에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태원쪽에서 이름난 한 역술가는 “중소 기업인이나 개인 사업가들은 주로 돈 흐름이 갑자기 막힐 때 역술가를 찾지만 재벌가는 주로 형액이 낄 때, 특히 검찰청을 오락가락하는 등 큰 구설에 오를 때 부인이나 친인척이 비밀스럽게 온다”고 말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례도 함께 전했다. “어느날 잘 알려진 유력 재벌기업 회장 부인이 나를 찾겠다고 연락해왔다. 다음날 아주 이른 새벽에 몰래 나를 찾아왔다. 당시 그 부인의 피붙이가 관재수에 걸려 검찰을 들락거릴 때였다”
몇몇 중견 기업인은 아예 신입사원 선발 때 역술을 이용한다. 경제전문인 한 역술가는 “얼마전까지 7개 중견기업에 신입사원 최종 선발 전 사주를 보고 채용할 만한 인물인지 가려내는 조언을 했었다”고 밝혔다. 검증 포인트는 이력서를 통해 호감 가는 지원자의 운세나 기(氣)가 고용주와 잘 맞느냐는 것. 이 역술인은 “이런 기업 대부분은 경영 과정에서 직원들이 큰 금전적 손실을 입혔거나 고용주와 심각한 의견 충돌을 경험한 곳”이라며 “내 조언 없이는 절대 사람을 뽑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역술로 고용주와 상극관계에 있거나 회사에 금전적 손해를 끼칠 사람을 미리 피한다는 것이다. 재계에는 작고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신입사원 채용 때 관상가를 배석시켰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온다. 이런 인물 감별법이 21세기에도 지속되는 셈이다.

*BOX기사
정치인들이 쏟아낸 2005년 ‘말 말 말’

지난해 정치계를 뜨겁게 달궜던 말들은 어떤 게 있었을까. 2005년 정치계를 화려하게 장식한 말잔치의 모든 것.

▲노무현 대통령
"의사가 입원실 와서 환자 옆에 딱 붙어서 죽으나 사나 주사만 놓으라는 것 아니냐"(10월30일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산행에서 민생경제에 전념하라는 야당의 요구를 일축하며)
"어떻습니까. 한미동맹 잘돼 가고 있다고 해도 괜찮습니까"(6월11일 워싱턴 한미정상회담 후 부시 대통령에게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강조하며)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겠다"(8월25일 KBS 국민과 대화에서 대연정 제안의 진정성을 강조하며)

▲정동영 통일부장관
"아랫목은 절절 끓지만 윗목은 차갑다"(12월10일 어려운 경제 현황과 관련, "중산층,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던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가 시원스럽게 해결하지 못해 안타까움이 있다"며)
"화해하고 악수한 역사가 겨우 5년인데 받은 것을 계산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다"=(12월5일 북한에 대해 주기만 하고 받은 게 없다는 지적에 대해 ‘받은 게 없는 것도 아니다’며)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
"메아리 없이 혼자 소리치고 있는 느낌이다"(11월9일 “세 차례나 식품업무의 관리 체계 구축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다른 부처에서 아무런 말이 없다"고 답답함을 호소하며.)
“한나라당은 어설프게 레이건을 흉내 내고 있다”(10월 20일 한국경제연구원 강연에서 한나라당이 제안한 감세정책을 비판하며)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
"대통령이 여당 내에서 작은 탄핵을 당했다"(10월29일 재선거 참패에 대한 청와대 책임론을 거론한 여당 의원들을 비판하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독극물과 같다"(10월17일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언론 보도태도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박근혜, 이명박씨가 대통령 된다고 나라 망하지 않는다"(11월27일 이해찬 총리 중동 5개국 순방 중 당내 팽배한 '대선승리 낙관론'을 지적하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정치는 몹쓸 일도 많아요" (2월3일 원주 신병교육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수성 1군 사령관이 건강해 보인다고 하자)
"내 사전에 재신임이란 없다" (3월9일 행정도시법 통과 이후 당내 일각의 조기 전당대회 소집 요구를 일축하며)
"전자공학 전공한 공주 봤냐"(12월6일 부산 동아대 특강서 일부언론이‘공주’라고 부르는 것에 반박하며)

▲이명박 서울시장
"중앙정부가 아니라 군청 수준"(6월8일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비판하며)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 것이지 총리가 뽑는 게 아니다"(5월23일 ‘지금의 시·도지사 가운데는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본다’는 이해찬 국무총리의 발언에 응수하며)

▲손학규 경기도지사
"'경포대'라는 신조어를 아느냐.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7월12일 대통령이 경제를 챙기지 않는다며)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
"차기 대통령은 대졸자여야 한다" (6월2일 라디오방송에서 고졸 학력인 노 대통령을 비난하며)
“내가 로보캅인가? 좀 쉬어야한다”(11월15일 20개월 동안 활동한 한나라당대변인의 사퇴 의사를 밝히며)
"노(盧)대통령이 노(老)대통령을 입원시켰다"(8월11일 국민의 정부 당시에도 도청이 있었다는 검찰 발표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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