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물론 사회 역시 답을 내놓아야

지난 5월11일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 광장은 인파로 북적였다. 그날 대한문 광장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이곳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바자회와 추모 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열린 바자회엔 배우 김여진, 정신과 의사 정혜신, 소설가 공지영, 방송인 김미화, 가수 정태춘 · 박은옥 씨 등이 자신의 소장품을 내놓았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추모 문화제에선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의 주인공 김진숙, 개그맨 김제동 씨 등이 무대에 올라 해고 이후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위로했다.

이 자리는 비단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자리만은 아니었다. '해고'의 불안을 늘 안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해방구와도 같았던 자리였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이로 인한 기업환경 악화는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으로 이어졌다. 특히 국경을 넘나드는 초국적 자본의 횡포 앞에 노동자들은 일개 소모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에 항의해 2009년 5월 옥쇄파업을 벌였다. 하지만 공권력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 시사매거진 지유석 기자
해고 노동자들은 절박하게 외친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사실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 학살이 아니다. 사람의 생계수단을 끊어 버리는 일 역시 학살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에겐 늘 '반항적 다큐멘터리 제작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의 작품은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를 정면공격하고 있어 이 같은 수식어는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마이클 무어는 지난 1989년 '로저와 나'를 발표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바로 정리해고 문제였다. 그의 고향은 미시건주의 조그만 소도시인 플린트. 시 인구는 약 3만여 명이었고, 이들은 인근에 위치한 제너럴 모터스(GM)사 공장과 직간접으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GM측은 공장을 일방적으로 폐쇄해 버린다. 공장 폐쇄는 즉각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졌다.

그는 대량해고가 불러온 후유증을 똑똑히 체험했다. 그는 무엇보다 대량해고가 전장(戰場)에서 벌어지는 대량학살이나 진배없다고 봤다. 실제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일으켜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 대량해고 체험은 그로 하여금 미국의 자본주의가 군사주의와 밀접히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켰다. 그는 이후 '볼링 포 콜롬바인', '화씨911'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와 군사주의의 민낯을 폭로해 나가기 시작했다.

쌍용차의 비극, 또 벌어질 수 있어

마이클 무어가 갈파했던 대량학살은 지난 4년 간 노동현장에서 횡행했다.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3년 전인 2009년 5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옥쇄파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공권력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쌍용자동차의 비극은 비단 공권력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대중들 역시 대량해고가 불러온 사회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와 유력 언론들은 노동자들의 생존을 건 투쟁을 급진좌경 세력의 준동으로 몰아갔다. 대중들은 해고가 가져오는 파멸적인 결과에 대해 무감각했고, 그래서 대량해고 사태를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했다.

쌍용에선 정리해고 후 22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더욱 심각한 건 이 같은 참극이 언제 어디서든 벌어질 위험이 높다는 데 있다.

정치권은 4월 총선 이후 새 판짜기에 한창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노동-진보진영의 대표정당이던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경선 후유증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권의 부산함에 사회의 관심이 쏠린 사이 22명의 죽음은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더 이상의 무관심은 금물이다. 사회적 무관심은 곧 23번째의 죽음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이들의 죽음에 책임을 짊어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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