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사는 곳, 주택의 상식회복을 꿈꾸며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대란으로 불리는 1997년 ‘IMF 외환위기’는 명백히 국내 문제였다. 무능한 정부의 국정운영 미숙과 부패한 관료들의 안이한 태도가 불러온 우발적인 사건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극심한 양극화와 빈부격차 역시 이 시기에 완전히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경제위기는 당시와는 조금 다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광범위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상황이 ‘우리 집에만 불이 난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온 동네에 불이 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 집에만 불이 났건, 온 동네에 불이 났건 잘 사는 사람들은 여전하고, 어려운 사람들만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빈익빈부익부로 요약되는 부조리한 사회병폐가 이제는 하나의 ‘사회적 이념’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우리는 이를 사회양극화 현상으로 묶어서 표현하지만, 경제 분야에서의 그 현상은 더욱 심각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국민 개개인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의 양극단에 존재하고 있는 부류의 양적 규모를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1% 대 99%가 서로 마주한 형국이다. 양적 규모가 이렇듯 극명한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각 부류가 발휘하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은 비슷하거나 1% 부류가 더욱 큰 상황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는 과연 어느 부류에 속하시는 분들인가. 자신이 99%에 속해 있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토양을 제대로 간파하고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부동산업계에서 활동하며 외국의 사례를 연구해 온 사람이다.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업계, 특히 주택시장에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60~80년대 급속한 산업화를 겪어온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 시장은 기형적으로 발전해 왔다. 조상들로부터 비좁은 국토를 물려받은 탓에 땅과 집은 세상의 그 어떤 재물보다도 귀중하고 안전한 재산이었다. 이러한 전통적 인식이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킨 것도 사실이다. 각종 정보들은 1%의 기득권층 사이에서만 통용됐고, 이를 재료로 이뤄진 부동산 거래는 막대한 시세차익을 발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집’은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자 일확천금으로 안내하는 통로쯤으로 여겨져 왔다.
이제 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가 왔다. 처절하게까지 느껴지는 정부의 각종 부동산대책에도 불구하고 주택매매시장은 거의 산소호흡기를 떼기 직전 상황까지 왔다. 주택매매시장에서 빠져나온 수요와 자금은 전세시장으로 몰려 다분히 비상식적이라 할 만한 전세대란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토지와 주택에 끼어 있는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 부동산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첫걸음이라 믿는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관심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주택임대시장의 활성화에서 희망을 본다. 필자 역시 세계 각국을 돌며 지난 20여 년 간 이를 연구하고 준비해 온 사람이다. 그것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있는 집값을 본래의 가치로 끌어 내리고, 천형과도 같은 부채를 안아야만 자신의 거처를 마련할 수 있는 이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라고 믿는다.
정당한 임대료를 지불하고 자신의 거처를 구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권리. ‘내 집 마련’이라는 막연한 꿈에 쫓겨 막대한 빚을 떠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 땅의 가장들에게 이를 선물하고 싶다. 또한 그것은 원대한 꿈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행복과 웃음을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인 ‘집’을 사전적 개념으로 바꿔 놓는 지극히 상식적인 개념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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