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전 비서관 “내가 몸통이다”, 검찰은 ‘진짜 몸통 찾기’ 착수

지난 2010년 6월29일 MBC PD 수첩이 방영한 ‘이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편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2008년 김종익 KB 한마음 前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패러디 영상물인 ‘쥐코’를 스크랩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고, 이 때문에 당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방송이 나간 직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이 한국노총 간부를 미행한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사찰범위, 목적, 합법성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2008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의 복기

이러한 사찰결과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아닌 고용노사비서실에 보고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민정수석실과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과의 갈등이 발생한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이 대통령의 최측근 세력으로 알려진 경북 포항 및 영일 출신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들의 모임인 ‘영포회’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 사건을 둘러싼 파문을 더욱 커졌다. 사건을 둘러싸고 거물 정치인들의 연루의혹이 확산되면서 권력비화의 조짐까지 보이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은 이 사건을 ‘권력형 게이트’로 규정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당시 한나라당은 “일부 공직자의 잘못된 행동이 부른 개인적 사건”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건의 윤곽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청와대 행정관이 국무총리실에 사찰에 필요한 대포폰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검찰이 이를 알고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아야 했다. 또한 공직지원윤리관실이 광범위하게 진행한 사찰결과가 청와대에 수시로 보고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이른바 ‘몸통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특이했던 사실은 여당 소속의 남경필, 정두언, 정태근 의원도 사찰을 받았다는 정황이 드러나며 여권 내 권력투쟁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세 의원이 이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의 총선 불출마 및 2선 후퇴 등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시점에서 사찰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영포라인의 개입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한창이던 2010년 7월은 7.28 재보선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에 당시 한나라당은 선거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에 당시 민주당은 연일 추가 폭로를 이어가며 논란의 불씨를 키웠다. 민주당은 “야당의 친노성향의 의원들과 비서 그리고 비서들의 친인척까지 계좌추적 등의 수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은 “민간인 사찰이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품위유지의무 위반은 물론 형법상으로도 직권남용, 강요, 업무방행 등 불법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어 2010년 7월6일에는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권은 “청와대 연루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만큼 현 정권의 어느 수사기관도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그 해 8월12일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과 김충곤 전 점검1팀장 등 3명이 민간인 불법 사찰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윗선’과 ‘몸통’의 실체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수사 직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의도적으로 파손됐으며, 서류를 파쇄하는 등 증거인멸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검찰의 초동수사 부재와 부실수사 의혹이 일었다.

3단 고음 작렬 “내가 몸통이다”

이렇듯 유야무야 가라앉는 듯 했던 사건이 2년여 만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3월3일 <한겨레21>과 <한겨레신문>의 특종보도에서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의 새로운 증언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장 전 주무관은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증거인멸을 청와대가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최종석 청와대 전 행정관이 2010년 7월7일 오전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내일쯤 검찰에서 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한다고 알고 있다. 오늘 중으로 점검1팀의 컴퓨터 전체와 진경락 지원관실 총괄지원과장의 컴퓨터를 물리적으로 조치해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 자리에서 최 전 행정관은 “하드디스크를 망치로 깨부수든지, 컴퓨터를 강물에 갖다버려도 좋다. 민정수석실과 이미 얘기가 다 돼 있어 검찰에서도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한겨레21의 보도는 당시 검찰의 수사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파문이 확산됐다. 당시 검찰은 진경락 전 과장이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장진수 전 주무관, 권중기 전 조사관이 실행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의 진술 녹취록을 공개하며 청와대와 검찰에 진상고백과 재수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추가 폭로도 이어졌다. 민주통합당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위(이하 특위)는 3월6일 오전 장 전 주무관의 진술녹취록 2차분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장 전 주무관이 청와대의 증거인멸 지시를 함구하는 대가로 대기업 취업 등을 제안 받았다는 주장이 포함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영호 청와대 전 고용노동비서관과 최종석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 등 의혹의 핵심 당사자들의 소환절차를 밟는 등 수사망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사건의 추가폭로가 이어지고, 검찰이 발 빠른 재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몸통을 자처하는 인물이 나타났다. 3월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컴퓨터 하드디스트 파괴 등 자료삭제 지시의 몸통은 자신이라고 밝히고 나섰던 것. 1년 9개월 전 최초로 사건이 불거지고 검찰이 수사를 진행할 당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한 바 있다.
앞서 장진수 전 주무관은 “2,000만 원을 입막음용으로 받았으며, 매달 특수활동비에서 280만 원씩 상납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 전 비서관은 “국정혼란을 막으려는 충정으로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의 진실왜곡을 막기 위해 진실을 밝힌다”며 “2,000만 원은 장 전 주무관이 형편이 어려운 것 같아 선의로 줬다. 하드디스크 삭제는 본인의 지시로 이뤄진 것으로 이번 사건의 몸통은 나 자신”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몸통이니 나에게 모든 책임을 물러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자료삭제가 증거인멸이라는 주장은 야당의 정치공세일 뿐이며 공무원 감찰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나 개인신상정보가 유출될 경우 국정혼란이 야기될 우려를 가졌다”며 증거인멸 지시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런데 이날 진행된 기자회견과 이영호 전 비서관의 태도는 여러 모로 이상한 점이 많았다. 시종 언성을 높이며 자신이 몸통을 강조하는 모습은 오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평가다.
3단의 고음을 지르며 진행된 기자회견은 마치 기자들과 국민들에게 치는 호통처럼 들렸다. 게다가 기자회견의 기본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질의답변도 없었다. 이 전 비서관은 자신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밝히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오죽했으면 현장기자들은 이날의 풍경을 ‘적반하장 기자회견’으로 이름 지었을 정도였다.

정치권은 이러한 전반적인 상황이 결과적으로 이 전 비서관의 ‘자백’의 신빙성을 상당히 떨어뜨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년 9개월 동안이나 침묵하던 그가 돌연 자신이 몸통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이유와 그 배경에 대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기자회견은 장진수 전 주무관이 “청와대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이 5,000만 원을 줬다”고 폭로하면서 의혹이 청와대 핵심으로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시작됐다.
장 주무관의 폭로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받은 돈은 현금만 8,500만 원에 달한다. 3심까지 진행된 변호사 비용까지 포함하면 최소 1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돈의 출처에 대해 야권에서는 “청와대나 그 관계자의 개인돈이 아니라 국정원 특수활동비 일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현 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만한 폭로가 터져나오자 이 전 비서관이 희생해 파장을 줄여보려고 시도한 것이 아니냐는 풀이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여야할 것 없이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는 목소리다. 우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철저하게 수사를 해 책임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것이 제 입장이며 당의 입장도 그렇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경기도 화성의 한국농수산대학을 방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불법사찰의 피해자라고 주장한 바 있는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 역시 21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권 말기, 특히 선거를 앞둔 지금이 마지막 기회기 때문에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 ‘고성국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현 정권에 불도저 같은 힘이 있었을 때는 별것 아닌 것처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결국엔 터져 나오게 돼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민주통합당은 한발 더 나아가 특검과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3월22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이번 사건에 대해 “특검과 국정조사로 진상을 밝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MB정권비리 및 불법비자금 진상조사특위에 참석해 “민간인 사찰은 청와대가 연루된 명백한 국기문란 사건”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검찰 재수사 활기, ‘진짜 몸통’ 드러나나

이로써 검찰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재수사가 시작된 만큼 이는 ‘증거인멸’ 차원이 아닌 민간인 사찰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장진수 전 주무관에 대한 1차 조사를 마무리하고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 등 이른바 ‘윗선’에 대한 소환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장 전 주무관이 4,000만 원 전달한 것으로 지목한 고용노동부 간부에 대해서도 소환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재수사가 ‘진짜 몸통 찾기’로 가닥이 잡히면서 증거인멸의 실체를 넘어 불법사찰 전반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2만 쪽이 넘는 2010년 수사 자료 검토를 완료하는대로 최 전 행정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이 전 비서관을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지난 1차 수사 당시 장 전 주무관에게 대포폰을 건넨 사실이 드러났던 최종석 전 행정관의 소환조사를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막았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반대로 최 전 행정관의 청와대 컴퓨터 로그기록을 확보하지 못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에 따라 2010년 검찰이 부실수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추가 수사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차 수사를 지휘했던 노환균 현 법무연수원장은 수사를 막은 일이 없다며 세간의 의혹을 일축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로 당시 수사를 총괄지휘했던 신경식 청주지검장 역시 수사과정에서 검사들과 의견조율을 해가며 지휘했을 뿐 의도적으로 찍어누른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재수사에 나서는 검찰의 모습은 결연해 보인다. 불법사찰 전반을 지휘한 ‘윗선’을 규명해내겠다는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이에 검찰은 진실을 파헤치는 데 있어서 진경락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과장을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 개입설을 폭로한 장 전 주무관이 증거인멸 실행 과정을 알고 있다면, 진 전 과장은 증거인멸 계획 과정을 비롯한 불법사찰 전반을 꿰뚫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진 전 과장은 증거인멸과 불법사찰이라는 두 사안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를 쥐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그가 수행했던 역할 때문이다. 당시 직제는 이인규 전 지원관 아래 기획총괄과장이 있고, 그 밑에 7개 점검팀이 배치된 구조였다. 기획총괄과장이었던 진 전 과장은 사건이나 제보를 각 팀에 배당하고, 이에 따라 올라오는 정보보고 등을 취합해 상부 제출용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지원관실 내부에서 행해졌던 대부분의 사찰내용을 그가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진 전 과장에 대한 재조사가 예정된 가운데 검찰이 얼마나 진실에 근접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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