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즈노사할린스크 중심으로 한인사회 위상 재고

러시아 진출 꾀하는 기업·지자체 교류 연계

러시아 사할린이 부상하고 있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근해의 가스전이 발굴되면서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에너지 메카로 자리잡았다. 더불어 침체된 러시아 경제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천연가스 사업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다수의 다국적 기업들도 사할린에 들어오면서 사할린의 지역 경제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호황을 따라 러시아 본토와 주변국에서 유입되는 인력들까지 가세하면서 건설 붐도 함께 일고 있다. 이 바람을 타고 러시아 사할린에 신(新) 한류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현덕수 SSD그룹 회장이자 러시아 사할린 한인회 회장이다. 외국인 최초로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민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그의 사할린 성공담과 향후 사할린의 경제발전에 대한 혜안을 들어본다.

러시아 사할린 시(市) 정부가 인정한 최초의 외국인
   
▲ 현덕수 러시아 사할린 한인회장. 사할린 신문 부동산개발과 건설, 농축산업 등 SSD그룹의 최고경영자이기도 하다.
‘모사제인 성사제천(謀事制人 成事制天)’, 현덕수 회장의 집무실에 걸린 액자에 있는 경구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에게 있지만, 그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는 말로써, 현 회장의 경영철학이자 생활철학이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세상과 발맞춰 흐르되, 몇 발자국 앞을 내다보고 일을 도모하는 지금 현 회장의 모습이기도 하다. 25년 전 사할린으로 건너올 당시만 해도 그에게는 단 두 척의 배만 있었다. 그마저도 한 척은 부패한 러시아 공무원들에게 뺏기고, 이를 악물고 벼텨온 세월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모든 일에는 때가 있어,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다는 것을 이 세월 동안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할 것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사람이 일을 도모해야 하늘도 도와줄 수 있다고 현 회장은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현 회장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뚝심의 사업가로 평가받는다. 부동산개발과 건설 계열사 5개, 농축산업 계열사 4개, 여기에 ‘사할린신문’이라는 언론매체까지 총 3개의 계열법인이 이를 증명한다.
최근 현 회장은 ‘로즈하우스(Rose-House) 프로젝트’로 더욱 각광받고 있다. 2015년부터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심 외곽에 조성되고 있는 로즈타운은 최고급 사양의 아파트로 사할린 상류층으로부터 러브콜이 쇄도한다. 1천6백 세대의 주상복합단지로, 단지 내에서 쇼핑과 스포츠, 레저까지 즐길 수 있어 사할린 도시계획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4개의 계열사로 운영되는 농축산업은 대단위 면적의 사슴농장과 그의 아호를 딴 목장 ‘록산원’ 등 6차산업을 접목해 이 또한 사할린 농축산업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이와 연계해 한국의 지자체들이 추천하는 농축산물을 이익과 상관없이 수입해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으로 홍보하고 판매해 한국 지자체 기업들의 수출 길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현 회장의 노력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연속 유즈노사할린스크 시(市)를 빛낸 ‘영웅상’을 수상하게 했고, 외국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는 결과를 이룩했다. 특히 명예의 전당에 등재된 것은 의미가 크다. 한국과 러시아 양국의 우호증진과 경제발전을 비롯해 사할린 시(市) 재정자립도에 크게 기여한 것을 비롯해 국제 수준의 현대식 도시 건축의 건설과 고용창출 등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로써 우리 현대사에서 잊힌 오욕의 땅 사할린에 한국인의 명성을 드높이 휘날리게 했다. 당시 러시아와 CIS(독립국가연합) 지역의 유수 언론매체들은 ‘신의 한 수를 두었다’고 평했다는 후문이다.
 
   
▲ 사할린 역사문화탐방과 스포츠문화센터 건립에 합의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세 사람(왼쪽부터 시사매거진 범효진 대표, 김길수 발행인, 한인회 현덕수 회장)
‘무사(無私)’의 정신으로 봉사하는 한인회 활동
현 회장은 지난해 11월, 한인회 정기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2대 한인회장에 연임되었다. 더불어 러시아와 CIS 지역 한인총연합회 총무이사도 함께 맡고 있다. 인간 현덕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무사(無私)’의 정신이다. ‘사심이 없다’는 이 말처럼 한인회장으로 활동하는 시간만큼은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원리원칙을 지키려 애쓰며, 한인들의 권익을 위해 헌신한다. 때문에 유즈노사할린스크 시(市) 공무원들에게 큰소리도 칠 수 있다고 현 회장은 웃는다. 이외에도 불우이웃돕기나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한인사회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다. 때문에 현 회장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붙어있다. ‘한인보안관’이 바로 그것이다.
사할린 진출 1세대로 꼽히는 그는 당시만 해도 진출 장벽이 높았던 국내 기업들에 사할린 진출의 등대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징용된 한인 동포들의 한을 달래는 작업도 진행해 더욱 칭찬을 받고 있다. 1천600여 기의 한인 묘가 들어서 있는 사힐린스크 제1공동묘지 입구에 이들의 행적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운 것이 그것이다. 국내에 있는 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한 이 행사는 그동안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한인들의 묘역을 돌보는 것과 동시에 이들의 한을 기리는 행사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현 회장은 이들을 기리는 추모관까지 건립할 예정이다.
   
▲ 현덕수 회장이 유즈노사할린스크 도심에 건설한 '로즈타운'의 전경. 최첨단 설비를 보유한 이 아파트는 사할린 건축업계에 이정표가 되고 있다.
이로써 사할린에서 살아가는 후세들에게는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고취하고, 사할린을 방문하는 고국의 동포들에게는 잊지말아야할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는 취지다. 이와 함께 현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중 하나가 한국에 있는 동포들의 ‘사할린 역사탐방’ 여행과 사할린 한인 3~4세가 한국을 방문하는 ‘고국체험탐방’이다. 실제 올 6월에는 카레예츠(러시아와 CIS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_편집자주) 청소년 모국체험 행사인 ‘희망꿈나무아카데미’가 예정되어 있다. 동북아 역내 한인 동포 4~5세에 속하는 청소년들이 고국의 발전상을 직접 확인하고 민족적 자긍심과 고국 사랑을 체험할 좋은 기회인 것이다. 더불어 현 회장과 본지는 사할린을 체험하고 탐방할 수 있는 여행코스도 만들어 사할린 알리기는 물론 한국 동포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인회장으로서 현 회장의 역할이 처음부터 만만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취임하자마자 매일 밤마다 자료와 싸워야했다. 열악한 조건은 둘째치고라도 한인사회에 떠도는 출처불명의 각종 악의적인 소문들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했다. 그때부터 현 회장은 사할린 시(市) 정부 관계자들과 지역주민들을 수시로 초청해 친목을 다지는 등 한인사회의 단합과 정을 나누기 위해 노력했다. 조수미 등 한국 연예인 초청 공연, 한-러 한국문화행사 개최 등 ‘한국제대로알리기’ 행사 등도 부지런히 개최하고 있다.
 
   
▲ 현덕수 회장은 '한국 제대로 알리기' 운동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열심이다. 사진은 지난 2014년 사할린 초청공연에 함께했던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와 KBS관현악단 관계자다.
한-러 민간경제 외교관 역할 톡톡히 해
SSD그룹은 글로벌 기술력 확보, 자기자본으로 무장한 내실이 탄탄한 기업이다. 전문면허만 해도 수십여 개 이상을 보유한 알찬 기업으로 건설, 건축자재 등 작은 부품 하나도 한국에서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회장의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또한 자기자본 비율이 90% 이상을 상회하는 신용 1등급 기업으로, 무차입 경영에 거래처와는 현금지급이 원칙인 그야말로 알짜배기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기업 이미지의 배경에는 현장을 중시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현 회장의 성실성과 신용도가 바탕이 되어 있다. 다들 현 회장을 얘기할 때, 타인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과 노력형의 집념파 경영인으로 칭찬한다. 빠른 두뇌회전과 정확한 판단력 등 업무 추진력도 일품이라고 덧붙인다.
한인회 관계자는 “학구적인 자세와 논리적이며 해박한 식견과 호탕한 성격에 패기도 넘친다”며 설득력과 강한 추진력이 돋보인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일에 대한 열정이 너무 과해 결점이 되기도 한단다. 그러나 그의 성실함과 신뢰성이 이 작은 결점을 덮어준다며 웃어 보인다. 자신을 경상도 청송의 ‘토종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현 회장은 우직한 경상도 사나이답게 한번 목표가 정해지면 애둘러 가는 법이 없다고 말한다. 늘 직진이란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불도저처럼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간다. 그래서 붙여진 또 하나의 별명이 ‘불도저’다. 이런 불도저 성향은 한인회장인 그가 현재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유용하다. 요즘 들어 교민들의 지위 향상과 관련한 각종 현안들이 폭주하고 있고, 기업들의 발전 과제 등을 비롯해 한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추천하는 기업들과 MOU를 체결하는 일들도 산적하다. 여기에 사할린한인과 고려인들의 각종 사회문제 확대방지 활동에도 전력투구하는 중이다. 뿐만 아니다. 이러한 현안 과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한국과 러시아 양국 정부를 오가며 펼치는 민간경제외교관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는 현 회장의 책무다. 현재 그는 강원도를 비롯한 경북 청송군과 MOU를 체결하는 등 한국의 지자체를 알리는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이다.
 
   
▲ (위)러시아 사할린 한인회 총회사진. (아래)현덕수 회장은 국내 지자체 기업들의 상품을 러시아 사할린에 수입하고 판매하는 민간경제외교관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사진은 청송군과 맺은 업무협약식 모습이다.
사할린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코르사코프 항 망향의 동산에는 특이한 조각물이 하나 있다. 이 조각물 아래에는 시 한 편도 적혀있는데, 제목이 ‘배를 세우는 뜻은’이다. 즉 이 조각물은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 모였던 강제징용 당한 한인들이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슬픈 역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당시 일제는 사할린에 있는 일본 국적의 모든 사람을 하다못해 유골까지도 자기 나라로 실어갔다. 그 와중에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당한 우리 동포들은 더 이상 일본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배를 탈 수 없었다. 그러나 자기들을 고향으로 데려다줄 조국의 배가 오기를 하릴없이 기다리던 한인들은 이곳에서 차디찬 겨울 눈발과 함께 쓰러졌다. 이처럼 사할린은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민낯과도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부끄러운 역사의 반복은 없어야할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알지 못해 보듬지 못했던 우리의 또 하나의 역사를 더듬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 70년간 버려졌던 강제징용 한인들의 묘역인 유즈노사할린리스크 제1공동묘지 입구에 세워진 추모비. 현덕수 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목장 부지에 추모관까지 세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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