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혁신 등 당 쇄신에 강 드라이브, 한 달 평가는 글쎄

지난해 12월19일 출범한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결국 당 간판을 갈아치우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비대위는 1월26일 국회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당명 개정안에 합의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1997년 신한국당과 ‘꼬마민주당’의 합당으로 당이 출범한 지 15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새 당명은 1월27일부터 사흘간 국민공모로 의견을 접수한 뒤 홍보기획본부장 등 전문가 검토를 거쳐 후보군을 압축하기로 했다. 30일 비대위 회의에서 새 로고 및 개정 당명을 의결하고 2월3일 상임전국위와 전국위에서 당론으로 의결키로 했다. 당명 개정 절차는 내달 10일까지 선관위 등록을 끝내면 완료된다.

한나라당 당명 개정, 박근혜 시대 열리나

당명 개정 안건이 올라온 1월26일 당일까지도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이날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에 전언에 따르면 박 위원장은 당명 개정안을 보고받은 직후 “의결하는 걸로 하시죠”라며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이에 따른 별다른 토론도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박 위원장은 이미 당명 개정의견을 추진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한나라당이 위기를 겪었던 2004년 총선 이후 당 개혁 차원에서 당명 개정을 추진했고 국민공모를 거쳐 3가지 안으로 압축하는 등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당시 수도권에 포진해 있던 쇄신파 의원들의 극렬한 반대로 접었던 것이다.

박 위원장 측은 “당명 개정을 통해 쇄신의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짤막한 코멘트로 당명 개정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선을 염두에 둔 박근혜 위원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각종 권력형 비리의혹이 터져나오는 상황인지라 당장 총선에서조차 정권심판론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와 여당이 아무리 분리되고 차별성을 강조한다고 해도 통상 둘을 묶어서 인식하는 대중의 특성상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차별성을 확보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곧 당명 개정이라는 주장이다. 즉, 현재의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를 의미하며, 개정된 새 이름은 총선과 대선을 정면돌파하게 될 ‘박근혜 호’를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 한나라당의 이전 명칭이었던 민주정의당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당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이후 개정된 신한국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재 쓰고 있는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은 조 순 전 서울시장이 지은 것으로, 이회창 당시 대선후보의 시대를 위해 개정한 성격이 짙었다. 한나라당이 다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자신의 시대를 열어야 하는 박 위원장에게는 탐탁찮은 이름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에 공을 들이는 이유

당 쇄신 작업과 함께 박 위원장이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4.11 총선 공천을 맡을 공심위원 선정으로 알려졌다. 공심위원 구성은 당초 설 연휴 직후쯤으로 예상되었으나, 2월 초순경으로 미뤄진 것으로 보인다.
당내 관계자들은 박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후보군을 만나기 시작했으며, 복수의 추천 인사들도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하마평에 오르는 인사들은 그야말로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최대한 다양성과 전문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박 위원장이 공심위원 구성에 신중을 기하는 데에는 우선 공천혁신을 통해 총선승리의 초석을 다진다는 의미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야권이 통합과 연대를 통해 정권심판론으로 압박해 오는 상황에서 박 위원장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는 공천혁신을 통한 인적쇄신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현재 활동 중인 비대위원 중 일부가 당 쇄신보다는 개인의 주장이나 개성을 앞세운다는 비판을 의식했다는 풀이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비대위 구성과정에서 얻은 ‘인사가 만사’라는 학습효과를 공심위 구성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풀이가 맞다면 곧 구성을 완료하게 될 공심위는 전문성을 갖춘 실무형 인사들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한편 공심위 구성에 앞서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출처 미상의 살생부까지 등장해 더욱 분위기가 나쁘다. 실제 설 연휴 직후인 지난 1월26일 한나라당 현역의원 42명의 실명이 거론된 공천 살생부가 나돌기도 했다. 이는 근거 없는 소동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현역 의원들은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이미 지난해 12월16일 현역 의원의 후보 경쟁력과 교체지수를 조사해 하위 25%에 대해 공천에서 원천배제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또한 전체 지역구 가운데 20%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 같은 공천 쇄신안에 따르면 최대 90여명의 현역의원이 물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이르면 1월 말부터 각 지역구별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현역 의원들은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지역구를 단번에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의 반영으로 해석된다. 요즘 여의도 국회가 상대적으로 한산해 보이는 이유도 각 의원들이 지역구를 챙기기 위해 현장을 뛰고 있다는 이야기도 이런 이유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인다.
지역구를 다녀온 의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더욱 우울하다. 이미 레임덕에 빠진 정권을 중심으로 권력형 비리의혹이 터져나오고, 선관위 디도스 공격사건이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 전통적인 한나라당 텃밭지역이라도 여당과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민심이 흉흉하다는 것이다.

서민정당의 꿈, ‘박근혜식 복지’ 그리고 재벌개혁

한나라당이 6년 만에 정강정책 개정을 앞두고 있다. 주요 내용은 ‘복지와 일자리’로 알려졌다. 1월27일 비대위는 정책쇄신분과를 개최하고 정강정책 수정안을 확정했다. 여기에는 ‘복지’라는 키워드를 가장 전면에 배치하는 한편, 일자리 분야와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이 확대 전면 배치되어 있다. 이는 기존의 한나라당 정강정책과 확연히 달라진 대목이다.
정책쇄신분과 대변인 권영진 의원은 “일자리 창출이 복지와도 연관되는 부분이 있지만 복지만큼 중요하고 큰 화두가 일자리”라며 “10개로 줄인 정강정책 중에서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박 위원장이 그간 펼쳐온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와 맥락이 연결된다. 박 위원장은 비대위 출범초기부터 당 쇄신의 핵심은 국민과 서민에게 더욱 밀착하는 것이라 강조해 온 바 있다.

이번 정강정책 개정을 통해 ‘박근혜식 복지’의 기본 틀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있을 4.11총선과 뒤이어 치를 대선의 주요 정책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것은 ‘경제민주화’ 부분이다. 이를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고강도의 재벌개혁이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단 개정된 정강정책의 또 다른 전면에 내세워진 ‘경제민주화’의 ‘그림’은 참 좋다. SSM으로 대표되는 재벌의 횡포로 인해 중소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친재벌 정당’의 이미지를 벗는 한편 ‘친서민 정당’으로의 이미지 쇄신을 이룰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한 김종인 비대위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김 비대위원은 “재벌은 항상 탐욕에 차 있는 사람들”이라는 등 거침없는 표현을 써가며 재벌개혁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한편 민주통합당 역시 ‘재벌개혁’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4.11총선은 ‘재벌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정책의 차별성 및 실효성 강화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는 방안을 비롯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 대기업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폐해 방지, 하도급 제도 전면 혁신 등에 대한 정책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박근혜 비대위 한 달, 엇갈리는 평가들

지난해 12월19일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한 달을 넘겼다. 비대위 본연의 임무인 당 쇄신은 물론이고 비대위 구성원 자체가 이슈와 논란을 만들어 내는 등 화제를 불러 모으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비대위 활동 한 달을 바라보는 세간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는 모양새다. 우선 지난 1월27일 비대위는 “위기의 한나라당이 다시 태어날 불씨를 살려놓기는 했지만, 제대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체평가를 내놨다.

여론조사로 확인되는 민심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나라당은 민주통합당에 10%p 이상 역전 당한 상태다. 대선후보 지지율에서는 안철수 교수와 박근혜 위원장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물론 출범 후 한 달 만에 나온 평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한나라당 체제가 총체적인 부실을 안고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는 점에서 회생을 위한 여론의 반전 기회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대위 체제의 성적표는 총선과 대선에서 분명하게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박 위원장이 이끄는 비대위의 성과적 활동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선 비대위와 공심위원 인선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독단적 인사’에 대한 비판이다. 당이 그야 말로 비상사태에 빠진 탓에 등장한 것이 비대위라는 점을 감안해 볼 때 그 수장을 맡은 위원장의 권한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한 설득력을 확보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박 위원장의 ‘소통’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박근혜 비대위가 진행하는 당 쇄신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박 위원장의 쇄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은 “박 위원장이 재벌개혁과 같은 담론적 정책사안에 대해서도 피하지만 말고, 이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면서 쇄신속도를 더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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