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보고 알았다는 경찰청장, 목숨 걸고 싸운 현장 경찰관

인천 도심에서 조폭들이 경찰이 보는 앞에서 유혈난투극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폭수보다 많은 경찰은 공포탄 한 발 쏘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경찰총수는 TV에 나와 “언론 보도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며 남의 얘기 하듯이 하더니,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특단의 대책’을 내리느니 ‘조폭과 전쟁’을 벌이느니 하면서 요란하게 뒷북을 치고 있다. 내년 총선 출마와 검·경 수사권 조정에 정신이 팔려 어깨에 힘주고 다니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는 비아냥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더구나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진 현장출동 경찰관이 경찰 내부 전산만을 통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항변하고 나섰다.
 

 경찰, 조폭에게 벌벌 떨었다?
최근에 일어난 조폭들의 난투극에 대한 경찰의 수수방관하고 무기력한 대응에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지난 10월21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길병원의 장례식장 앞에서 폭력조직 A파의 조직원 100여 명과 B파의 30여 명 간의 충돌이 일어났다. 이날의 충돌은 B파에서 A파로 소속을 옮긴 조직원이 B파의 조직원에게 장례식장에서 흉기로 2~3차례 찔려 중상을 당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얼마 전 교통사고로 숨진 A파 소속의 조직원 부인을 조문하기 위해 A파 조직원들은 장례식장에 모여 있었다. 근처에서 소속 조직원의 부상소식을 들은 A파 조직원들은 곧바로 장례식장 밖에 모였고, 이러한 연락을 받은 B파의 조직원들도 속속들이 모여 양측의 대치 상황이 이루어졌다. 이후 기동 사격대와 방범순찰 등 경찰 조직 약 70여 명이 출동했고 두 조직을 분리, 해산시키며 더 이상의 유혈충돌을 방지했다.

현재 경찰은 다른 파 폭력조직원에게 흉기를 휘두른 폭력 조직원에 대해 구성영장을 신청하고 난투극에 가담한 6명을 추가 검거했다. 조폭의 충돌 이전에 112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남동 경찰서 1개의 형사 팀이 조폭들의 현장에 있었지만 이를 제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며, 경찰의 초기대응 미흡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르내렸다. 당시 출동한 경찰관들이 눈앞에서 조폭 한 명이 흉기에 찔리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 측은 “갑자기 한 남성이 상대방을 흉기로 찔렀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막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이에 대해 해명했다.

지방 경찰청과 본청 수뇌부까지 수사착수
이러한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과 서울 구로구 장례식장의 비리 의혹에서 촉발된 경찰의 대대적인 내부 감찰 범위가 급속하게 확대됐다. 또한 지방 경찰청과 본청 수뇌부까지 대대적으로 수사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찰 조직 내에 존재하는 고질적인 허위·축소보고 관행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분석한다. 관할 서장을 넘어 지방청이나 본청까지 책임을 묻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인천 지역 조폭에 미온적으로 대응한 책임을 물어 인천지방경찰청장과 차장, 경찰청 본청 수사국장과 형사과장 등에 대한 감찰을 진행 중”이라며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데다 본청에 축소·허위 보고한 문제도 있다”고 24일 밝히기도 했다.
최초 출동한 강력팀원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다면 상황실장에게 보고해 적절한 경찰력을 배치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경고방송을 하는 것에 그쳤고 형사과장도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던 것으로 알려져 경찰청 감찰라인은 검거의지가 부족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경찰청은 안영수 인천 남동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고 형사과장과 강력팀장, 상황실장, 관할 지구대 순찰팀장을 중징계하기로 했다.

공식적인 라인을 통해 제대로 보고를 받지 못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언론을 통해 현장 상황을 접하게 되었고 이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고 전해졌다.
한 언론사는 조현오 경찰청장이 “조폭들이 단순한 우발적 충돌을 한 정도로 보고를 받았는데 TV를 보고 칼부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현장 경찰이 적당한 수준에서 덮고 감춘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만큼 허위·축소보고 관행을 없애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또한 “조폭의 숫자가 많다고 출동한 경찰관이 위축돼 제대로 된 정찰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며 그런 직원들은 우리 조직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도 덧붙였다.

조 청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25일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조폭을 두려워하며 뒤꽁무니를 빼면 그게 경찰이냐”며 “그렇다면 총은 왜 들고 다녀야 하느냐”고 질타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경찰) 자신의 목·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한이 있어도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행동했어야 한다”고도 비난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조폭에게는 인권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강조하며 “공공장소에 운집하며 일반 시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들은 경범죄로도 처벌할 근거가 있는 만큼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제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에 따라 지방청 광역수사대에 조폭 전담수사팀을 편성했으며 24일부터 12월까지를 조직폭력 특별단속 및 일제점검 기간으로 설정, 집중 단속에 들어갔다.

“꽁무니 빼” 질타 VS “최선을 다해” 반박
인천 조폭난투극 사건과 관련해 앞서 조현오 경찰청장이 “꽁무니를 뺏다”고 질타한 것에 대해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들이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반박 글을 올려 파장이 일고 있다.
10월26일 조폭 난투극 현장에 출동했던 인천남동경찰서의 강력팀 A경위는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글을 경찰 내부통신망에 올려 해명에 나섰다. 

A경위의 글에 따르면 “남동서 강력3팀 팀원 5명은 지난 21일 상황실로부터 연락을 받고 전기 충격기 등 장비를 챙겨 장례식장에 도착했다”고 글을 시작했다. 강력팀이 도착했을 때 주변은 이미 평온한 상태로 별다른 조짐이 없었다는 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탐문을 시작하자 조폭추종세력들이 모여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A 경위는 형사과장에게 상황을 전했다. 지원요청을 하던 중 형사기동대 차량 뒤쪽 30여m 떨어진 곳에서 남자 2명이 뛰어왔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형사들이 이들 두 명을 붙잡았으나 이미 조폭이 다른 조폭을 흉기로 찌른 상태였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칼을 휘두르던 순간에 전기 충격기를 이용해 경찰들은 현장에서 이들을 체포했다고 피력했다. 

A경위는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들이 위기 앞에서 목숨을 걸었다”며 그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조직원이 칼을 휘두를 때 방치하고 보고만 있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정면으로 비판했다.
언론보도에서 공개된 CCTV 영상 중에 형사기동대 차량 뒤에서 뛰어 다닌 사람들이 조폭이 아니라 자신의 팀원들이었다며 엉뚱하게 강력팀원들이 조폭으로 편집된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동료와 선후배 경찰관들을 향해 “저는 결코 꽁무니를 빼는 그런 비굴한 경찰관은 아니었다. 목숨을 걸었던 자랑스러운 강력팀 형사였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알려달라”고 호소하며 글을 끝맺었다.
A경위의 글은 10월27일 조회 건수가 5,500건을 넘으며 관심을 끌고 있다. 동료 경찰들과 네티즌들의 댓글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들은 조폭들에게 겁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상황만 촬영하고 있다고 경찰들에게 일침을 가격했던 조현오 청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으며, 경찰 수뇌부가 일선 형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의 글도 적지 않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조폭 난투극을 목격한 주민은 “영화 ‘친구’의 장면을 연상케 했다”며 한 언론이 보도했다. 한 목격자는 “승강기가 내려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한참 후에 도착한 승강기에는 검은 양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며 그때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으며, 다른 목격자는 “상주들이 낫을 들고 날뛰는 등 난리가 났다. 무서워서 숨도 못 쉬고 있다”고 숨 가쁘던 당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장례식장 비리 의혹
교통사고나 자살 등으로 숨진 시신을 돈벌이 수단으로 팔아온 경찰들에 대해 검찰 수사와 경찰청 감찰이 진행 중이다.
서울 남부지검은 10월 중순 서울 영등포 인근 경찰서의 경찰관들이 시신 1구당 30만 원씩 뒷돈을 받는 조건으로 변사시신을 특정 장례식장에 몰아줬다는 제보를 입수했다. 장례비용 등을 챙기려는 수작이었다. 장례식장 시신 거래는 경찰의 고질적인 비리 가운데 하나다.

검찰은 시신을 팔아넘기며 뒷돈 거래를 한 경찰관 10여 명의 실명과 돈이 오간 액수가 적혀 있는 장부를 입수했다. 또한 함께 공조한 장례식장 업주 이모씨를 10월24일 구속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경찰청은 영등포 일대를 포함한 서울 시내 31개의 모든 경찰서를 대상으로 대대적 감찰에 나섰다.

지난해 9월 부산 장례식장에서는 업주가 경찰 부검의로부터 시신을 넘겨받고 1억 5,000만 원의 뇌물과 향응을 제공했던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경찰관계자는 “교통사고 사망자를 어느 장례식장으로 옮기라고 하기만 하면 쉽게 돈을 받을 수 있어 일선 경찰관들이 유혹을 떨쳐내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서 구속된 장례식장 업주 이모씨는 구로경찰서 경제수사팀에 근무했던 경찰 출신으로 알려지며 물의를 빚었으며, 금품 수수비리로 퇴직했던 것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뒷돈을 주면서 변사시신을 받으면 장례비용으로 최대 10배 가량의 이익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으로 중소 장례식장의 3일장의 비용은 400만~500만 원으로, 경찰이 변사한 시신을 발견해 특정 장례식장으로 옮겨 놓으면 경황이 없는 유족들은 시신이 안치된 장례식장에서 그대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등포구의 한 장례식장 업주는 “빈소 사용료, 문상객의 식대, 염 비용까지 수백만 원이 해당 장례식장에 들어와 결국 그에 따른 수익이 엄청 나기 때문에 일부 장례식장들이 경찰관들과 뒷돈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경찰청 감사관실은 이씨의 장례식장 외에도 영등포경찰서와 구로경찰서 내 2곳의 장례식장도 이 같은 방식으로 경찰로부터 변사 시신을 받았는지에 대한 혐의를 포착해 조사 중이다.
경찰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등포와 구로경찰서는 한 해에 60여 구의 시신을 이씨의 장례식장에 인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근에 한 장례식장에는 70여 구, 다른 장례식장에도 50여 구가 인도 되었다. 경찰은 “변사 시신은 발견된 장소와 가까운 장례식장으로 가는 것이 정상적인데, 특정 병원에 몰렸다면 뇌물이 오갔을 가능성이 커 집중 감찰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뒷돈을 받고 장례식장에 시신을 인도한 유착비리 사건에 연루된 영등포경찰서와 구로경찰서의 이주민, 이봉행 서장을 각각 지휘, 감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기발령했다. 또한 올 초 장례식장 유착비리 사건의 감찰을 했지만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하고 내사 종결한 서울경찰청 유현철 청문감사관도 교체됐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커지면서 경찰비리를 수사하는 전담팀이 꾸려진다. 지방청에 경찰 비리만 수사하는 전담팀이 꾸려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사팀이 꾸려지기 전까지는 수사 2계가 일반 수사와 내부 비리 수사를 병행해왔다. 서울지방경찰청은 경찰 관련 비리와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수사과에 ‘내부비리 전담수사팀’을 신설한다고 26일 밝혔다. 전담수사팀은 청문감사담당관에 보고된 경찰 관련 각종 직무고발과 수사의뢰사건을 전담하게 되며 9명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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