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와 5년간 연구 협력 통해 통증, 심혈관, 알츠하이머 질환 연구에 총력

2007년 미국에서 개봉된 한 편의 문제적 영화. 화씨 9/11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이미 한 차례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마이클 무어 감독이 내놓은 새로운 영화 ‘식코(Sicko)’는 미국의 의료보험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수익논리에 사로잡혀 필요한 헬스 케어 서비스도 생략하는 미국의 의료보험제도가 병력이 있는 환자를 의료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해 결국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고발했다. 또한 영화는 감독 특유의 도발적이고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지상 최대 낙원이라 선전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의료시스템을 캐나다, 프랑스, 영국, 쿠바 등의 의료보장제도와 비교해 많은 화제를 모았다.

1971년 2월18일 미국은 공공의료제도를 벗어난 시장논리를 따르는 의료정책을 선포했다. 민간의료보험이 출범하게 된 것이다. 2003년에는 한 술 더 떠 부시 대통령이 ‘의료보장제도 의약품 개선 및 현대화에 대한 법’을 통과시켜 노인들이 전보다 많은 돈을 써야만 약을 처방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의 ‘최악의 보건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그렇다고 개선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빌 클린턴 前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영부인이었던 힐러리가 보건정책을 개선해보려고 애썼으나 이미 민간 의료보험으로 이익을 본 일부 권력자와 이익단체들, 그들과 연결된 정치인들의 반대로 시도조차 못하고 끝나버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국은 응급상황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암이나 위험한 질환 등을 수술할 때 미국병원이 민간의료보험사에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보험사측에서 ‘치료가능’, ‘약 지급 가능’ 방침이 내려져야만 치료가 진행되고 불가 방침이 내려지면 그 어떤 병원에서도 치료가 불가능하다. 결국 돈이 없어 민간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환자는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영화 ‘식코’는 바로 이러한 점을 꼬집는다. 영화에 등장한 민간 의료보험 가입자인 줄리 피어스는 남편이 신장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서 약 처방과 신장이식 가능성에 대해 통보 받았지만 ‘신약이 암 종류에 적합하지 않다’, ‘신장 이식은 위험하다’는 보험사의 승인 불가 통보에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미국 의료보험의 불편한 진실

우리나라는 보험공단의 보험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입하게 되어 있어 사실상 국가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보험공단이 모든 병원과 계약을 해 의료기관(병의원)에 진료비를 환자 대신 일정부분 지불해 주고 환자는 어느 병원이든 가리지 않고 같은 가격에 표준화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반대로 민간의료보험이 우리나라의 보험공단의 역할을 한다. 국민 개개인은 보험회사들을 선택할 수 있고 이 보험회사는 자기와 계약을 맺은 병원에서의 진료만 보험료를 지급해 준다. 이 병원들은 보험회사의 소유인 경우가 많아 영리목적의 보험회사가 병원자본에 직접 관여하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 했듯 ‘식코’가 꼬집었던 것도 바로 이 영리목적에 사로잡힌 의료제도였다.

미국 의료보장제도에 소비되는 지출은 국민총생산의 16% 정도다. 이는 2017년에는 19.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유아사망과 수명에 관한 정책들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두 배 가량 뒤처지고 실제로도 다른 산업국가들에 비해 높은 유아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 평균수명 역시 세계 42번째이며, 세계보건기구는 2000년에 미국의 의료제도가 가장 비싸고, 전체적인 수행능력은 37위, 연구에 포함된 191개국 중 의료제도의 전반적 수준은 72위라고 평가한 바 있다.
2008년 Commonwealth Fund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의료제도의 수준은 19개 비교된 다른 국가들 중 최하위였다. 이를 두고 “미국은 오로지 부유하고 산업화된 나라일 뿐, 모든 국민이 받을 수 있는 보장제도는 가지고 있지 않다”고 평가했다. 하버드 대학이 미국의 공공건강 저널에 발표한 연구 또한 미국의 부족한 의료보험제도가 매년 4만 4,800명 이상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2009년 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미국 국민 47만 명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환자와 간호사의 최단 거리 ‘이중 복도’

휴매나(HUMANA)는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미국 의료보험회사 중의 하나다. 또한 ‘포춘’ 지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에 드는 회사이기도 하다. 미국 내 고객은 1,150만여 명. 직원은 2만 5,000여 명에 이른다.
휴매나는 1961년 헤리티지하우스(Heritage House)라는 재택간호, 일종의 양로원에서 출발했다.
데이비드 A. 존스(David A. Jones)와 웬델 체리(Wendell Cherry)가 4명의 동업자가 세운 이 양로원은 1968년 익스텐디캐어(Extendicare)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이는 미국에서 가장 큰 재택 간호회사가 됐다. 그해 처음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운영자금을 확보한 회사는 같은 해에 앨라배마 주 헌츠빌에 건설 중이던 메디컬센터병원(Medical Center Hospital)을 인수하고 1970년에는 헌츠빌의 병원 외에도 9개의 병원을 소유하게 됐다.

1972년부터는 재택 간호 체인 사업을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병원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회사가 ‘휴매나’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도 이 즈음인 1974년. 이후 회사는 급성장을 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회사는 조기 착공 건설 프로세스를 채택해 1978년에는 아메리칸 메디코프 사(American Medicorp)를 흡수 합병해 회사의 몸집을 키웠고, 한 달에 병원 한 개씩을 세워 올렸다.
이 시기에 휴매나는 ‘이중 복도(double corridor)’ 설계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중 복도’는 간호 서비스 관련 시설은 건물 가운데 안쪽을 두어서 간호사들은 그것을 이용하게 하고, 입원실은 그 바깥에 두는 설계 방식으로, 환자와 간호사들 간의 거리를 최소화 해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 휴매나는 세계 최대의 병원 체인점 회사가 됐다. 1985년에는 루이빌에 휴매나 심장 의료원을 완공해 인공 심장 연구 결과물을 로버트 자르빅 및 윌리엄 드브리스로부터 매입했다.

양로원으로 출발, 의료보험 기업으로 새로운 전기

휴매나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것은 1990년대. 이 때 휴매나는 소비자 의료보험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했다. 이는 1980년대부터 미국의 건강 의료 시스템이 발전하기 시작해 이에 발맞추기 위한 방안이었으며, 이에 따라 휴매나는 건강 보험 상품을 개발해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병원 사업 부문은 1993년에 갤런 헬스 캐어(Galen Halth Care)라는 이름의 자회사로 따로 분리했다.
한편, 2006년부터 자회사 라이트소스(RightSource)를 출범시켰다. 온라인 서비스의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휴매나도 인터넷 메일을 통해 약을 주문받는 사업 분야에 진출, 시대에 발을 맞췄다.

그리고 2010년 11월, 휴매나는 의료서비스 제공업체인 콘센트라(Concentra)와 7억 9,000만 달러 규모 인수합병에 합의했다. 이날 휴매나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의료개혁법 규제와 자금지원 축소 속에서 의료서비스 시장을 조금 더 확장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콘센트라는 미국 42개 주에 300개 이상의 의료시설을 통해 연간 8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으로, 이는 휴매나가 5년 간 성사시켜 온 인수합병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었다.
마이클 맥컬리스터 사장은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 인구를 겨냥하고 있다. 거기엔 콘센트라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많은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번 인수합병으로 수익은 더욱 다양화 되고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적인 기회 획득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인 건강 개선을 위한 연구에 총력

지금 휴매나는 의료서비스를 비롯해 단체보험, 장애보험 등을 마련하고 있으며, 군인 및 그 가족에게도 건강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휴매나가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은 평균 360억 달러(약 41조 원) 이상이다. 여기에, 휴매나는 최근 노인 건강 개선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화이자와의 5년간 연구 협력을 통해 만성질환 중 통증, 심혈관 질환과 알츠하이머 질환 연구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
미국 인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노인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어 대상이 되는 노인들은 향후 10년 동안 36%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휴매나는 화이자와 함께 처방약물의 사용 및 치료의 비용과 질 등에 따른 연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예를 들면, 화이자는 통증 관리 분야에 비용을 산출해 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도출, 휴매나에서 제공하는 메디케어 가입자의 치료경로에 존재하는 비효율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치료를 늦추는 원인과 오진의 원인을 탐구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내는 것이 이 연구 협력의 목적이기도 하다. 휴매나와 화이자는 비효율성을 명확히 한 뒤 보험급부설계를 변경해 환자와 의료교육, 치료의 새로운 모델 등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처방약에 대한 환자의 복약 준수를 향상시키고, 헬스 아웃컴 전체의 의약품에 대한 영향 등에도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력이 휴매나의 보험 프로그램과 화이자의 제품 개발에 참고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민간 의료보험은 여전히 문제점이 많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들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일부 이익단체의 몸집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얼마나 편안하게 오래 사는가 하는 것이다. 휴매나가 이 사이에서 어떠한 행보를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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