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기계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
끊임없는 도전만이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제조산업은 우리나라의 70-80년대의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견인차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생활의 질이 향상되면서 제조업을 3D직종의 하나로 인식하면서 예로부터 좋은 손재주를 가진 우리 민족의 우수성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제조업분야의 쇠퇴를 가져오게 되었다. 인력수급의 어려움을 겪게되면서 임금도 많이 상승했지만 사람을 구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많은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고, 이러한 상황이라면 반도체나 첨단산업의 회사들도 언제 한국을 떠나는 날도 머지 않아 올 것이라고 우려하는 상황까지 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이제는 절실하게 사람들의 피부로 와 닿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을 지키면서 32년이라는 세월동안 기계제작에 혼신의 힘을 쏟아온 인물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기계전문분야의 ‘명장’의 칭호를 얻은 (주)대도이엔지의 정영계 대표를 만나 그의 기계제작의 외길인생을 들어 보았다.

32년의 정밀 기계 제작을 위한 쉼 없는 질주
(주)대도이엔지의 정영계 대표는 99년 신지식인으로 중소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선정되는 등 정밀기계제작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가 기계전문분야의 ‘명장’이 되기까지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를 다니고 있던 그가 고등학교를 진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전국의 극심한 가뭄으로 농가들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집안의 장남이었던 정 대표는 대학을 가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을 하고 직업훈련소를 거처 취업을 하게된다. 회사를 다니던 그는 배우지 않으면 자신의 발전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74년도 20살이 넘은 나이에 서울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그는 “직장과 학교를 병행하다보니 잠은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잤습니다.”며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회상했다. 정밀기계제작 업계에서 많은 노하우와 경력을 쌓았지만 70년대 오일 쇼크로 정 대표는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때 그의 나이가 32살이 되었는데 다시 그는 자존심을 버리고 빗자루로 공장을 청소하는 말단으로 금형을 배우기 위해 한 회사에 입사를 했다. “경력이나 이론은 내가 현장의 사람들보다 많이 알고 있었지만 현장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빗자루를 들고 밑바닥부터 일을 했습니다. 3년 정도 일을 배우니까 어느 정도 기술을 익히게 되지요, 그런데 다니던 회사를 사장님이 처분을 한다는 겁니다. 고민 끝에 얼마간의 자금을 모아 중고기계 한 대를 구입해 부담 없이 시작한 것이 지금의 대도이엔지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그의 특유의 부지런함과 제품에 대한 철저한 관리로 그 기술력을 인정받아 갈 즈음 일본의 한 회사에서 샘플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해 왔다. 평소 제품을 꼼꼼히 만들기로 정평이 나있는 정 대표는 그 샘플을 만들어 보냈는데 전격 계약을 요청해 왔던 것이다.



“당시 천만엔 정도의 물건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해 왔지만 저는 백만엔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많이 만들어 내면 수익도 많이 낼 수 있겠지만 불량이 생긴다면 장기적으로는 회사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적은 물량이라도 철저하게 불량률이 제로에 가깝게 만들어서 납품을 하다보니 거래기업과 신뢰가 쌓이게 되면서 점차로 물량이 늘어갔고 지금은 97%이상을 수출물량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주)대도이엔지가 생산하고 있는 자동화설비 및 로봇의 정밀 부품은 일본의 도요다자동차의 계열사인 일본전장(주)으로 전량 수출하고 있다. 또 의료 분야의 치료용 특수기기인 ‘안면골교정기’를 국내 처음 제작하기도 했다. (주)대도이엔지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정밀기계제작 업체로서 일본기업과 비교해도 오히려 기술력에서 더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대표는 직원들에게도 자신이 제품을 살 때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으로 제품을 만들어 줄 것을 당부한다.

제조업과 정밀기계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할 터
정 대표는 마흔여덟의 나이에 서울산업대학교 기계공학과에 늦깍이 대학생으로 99년에 입학했다. 낮에는 유망 중소기업의 대표로, 밤에는 어린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들었던 그는 올해 졸업을 했다. 누구보다도 우리나라의 정밀기계산업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는 정대표는 엔지니어가 대우를 받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명장으로서 유망중소기업의 대표로서 많은 직업훈련학교에 강연을 다니고 있는 그는 강연을 할 때마다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기술로 평생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을 이루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실현 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한 단계씩 점진적인 전진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하는 정 대표는 “무리한 욕심은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한 단계 한 단계 내가 할 수 있는 욕심부터 단계적인 욕심을 부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분명 원하는 단계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고 자신의 경영철학을 밝혔다. 정 대표는 지금 정밀기계 업계의 후진을 양성하는 일이 시급한 문제라며 기술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하더라고 교육을 시키고 기술을 습득하게 여건을 만들어 줄 생각이라며 후배들의 양성에 힘을 다 할 것이라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정 대표는 우리나라가 너무 IT 산업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고 제조업과 정밀 기계 분야가 IT와 조화를 이루었을 때 균형된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며 기계산업의 무관심을 안타까워했다.
(주)대도이엔지의 직원들은 6년 전부터 자신의 월급에서 1%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내고 있다. 처음에는 직원들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정 대표는 어려운 회사사정에도 불구하고 상여금을 지급했다. 그렇게 1%씩 모아서 이웃을 돕는 일을 시작해 지금은 회사에 정착되어 모든 직원들이 이웃을 돕는데 동참을 하고 있다.

자신이 선택한 일을 평생을 두고 한다는 것은 진정한 장인정신이 없이는 힘든 일이다. 자신의 일을 위해 32년이라는 세월동안 모든 열정을 바친 정영계 대표. 이 시대의 장인으로서, 최고 경영자로서 명인, 명장이라는 칭호가 그의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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