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發 위기, 홍준표 사퇴시키고 비상대책위 출범시켜

10.26재보선 대패와 선관위 디도스 파문,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로 벼랑 끝에 내몰린 한나라당이 새롭게 대열을 정비하고 있다. 12월19일 열린 한나라당 14차 최고위원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됨에 따라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이 기사회생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002년, 이른바 ‘차떼기 파문’으로 홍역을 치르던 당시 ‘천막당사’를 앞세워 당을 위기에서 구출한 바 있는 박 비대위원장의 리더십이 다시 한 번 발휘될 수 있을 것인지 정치권 안팎이 주목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드리운 ‘오세훈의 저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민투표 논란으로 시작된 이른바 ‘무상급식 정국’은 투표율 저조로 인한 개함 불발과 함께 오 전 시장의 사퇴로 이어졌다. 그리고 곧 이어 진행된 10.26재보선에서 야권단일 후보 박원순 현 시장이 여당의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서울시청에 입성했다.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완패는 한나라당의 위기를 몰고 왔다. 당 일부에서는 ‘오세훈의 저주’가 시작됐다는 말들이 나오기도 했다. 4년 만에 선거지원에 나섰던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표는 수치스러운 패배의 꼬리표를 안게 됐으며, 여권 내에서 거론되던 대선 잠룡들의 행보도 눈에 띄게 위축됐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선거에서 확인된 20~40대의 민심이반이었다. 이는 서울과 젊은층의 표심이 여권에서 떠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총선은 물론 대선에도 큰 영향을 끼칠 만한 지표였다.

또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기간 중 안철수 서울대 교수라는 걸출한 정치신인이 등장해 박근혜 대세론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에 수도권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중진 이상의 잠룡들의 경우 대선도전은커녕 총선 당선도 보장받기 어려운 지경에 내몰리게 됐다.
이후 한나라당은 내부로부터 급격한 균열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12월7일 유승민, 원희룡, 남경필 의원이 최고위원직을 동반 사퇴했고, 11일에는 나경원 의원 역시 최고위원직을 내놨다. 이에 홍준표 지도부는 재창당 수준의 쇄신안을 내놓으며 수습을 시도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홍 대표는 당 안팎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12월9일 전격 사퇴했다. 7.4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5개월 만에 낙마한 것이었다. 홍 대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로 위기를 맞았지만, 재심임을 받으며 순항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어 터진 이른바 ‘선관위 디도스 사건’의 파장으로 그가 내놓은 당 개혁 카드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욕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함께 그동안 홍 대표를 지지해 왔던 친박계까지 등을 돌리면서 끝내 사퇴의 고배를 마셔야했다. 그는 사퇴발표 자리에서 “당 쇄신을 마무리 짓고 자신 사퇴하려 했으나, 본인 역시 쇄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데 대해 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며 서운한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후 한나라당에는 때 아닌 ‘불출마 선언’이 줄을 이었다.

12월23일 서울 종로 출신의 3선 박 진 의원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기에 처한 당을 살리기 위해 정치 1번지 종로를 대표하는 자신부터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내년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친이계로 알려진 박 의원이 당 쇄신을 위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함에 따라 수도권은 물론 영남 및 초선, 중진의원 등 현역의원 전원이 불출마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에 앞선 12월11일, 이명박 대통령의 형이자 여권의 실세로 불리는 6선 이상득 의원이 불출마를 표명했으며, 같은 날 초선 홍정욱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12월20일에는 부산 출신의 초선인 장제원, 현기환 의원도 이에 동참했다.
이와 함께 친박계 중진의원들 사이에서는 박 전 대표의 인적쇄신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집단 불출마 선언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12월 말 현재 한나라당 내 현역의원 가운데 내년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한 의원은 모두 7명으로 늘어났다.
지난 8월에 시작된 오세훈의 ‘카드’가 결국 ‘저주’로 작용해 한나라당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모양새로 전락했던 것이다.

‘쇄신’으로 대표됐다가 ‘쇄신’으로 사퇴

홍준표 전 대표는 검사시절부터 비주류의 길을 걸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영원한 비주류’로 각인되어 있던 홍 전 대표가 주류로 전격 등장하게 된 것은 7.4전당대회에서였다.
그는 수락연설에서 “변방의 정신을 잊지 않겠다”며 쇄신의 고삐를 당길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당내에서 뚜렷한 지지세력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당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나라당 안팎에서 불고 있던 ‘쇄신바람’ 덕분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당권을 잡은 지 5개월여 만에 ‘쇄신바람’에 휩쓸려 자의 반, 타의 반 대표직에서 사퇴하게 됐다. 사실 홍 전 대표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한 측면도 없지 않다. 실질적으로 홍 전 대표가 당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주민투표 투표함 개함 불발로 인한 오세훈 시장의 전격 사퇴, 10.26재보선 패배, 선관위 디도스 사건 등 외부적인 사건이 연이어 터진 탓이다.
홍 대표는 취임 이후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고 수평적 당청관계를 구축하는 등 당 쇄신에 누구보다도 앞장선 인물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외부의 돌발적 파문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 미숙한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개표조건에 미달한 투표율을 기록해 개함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승리했다”는 평가를 내놓아 이반된 민심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또한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인해 설화(舌禍)에 자주 휘말렸던 것도 패인으로 작용했다. 여기자를 향해 ‘맞는 수가 있다’, ‘이대 계집애들’, ‘꼴같잖게 대드는 것들을 확 쥐어 박고 싶었다’ 등 각종 말실수가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홍 전 대표의 리더십 위기는 선관위 디도스 파문이 발생한 후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먼저 제안하자는 최고위원들의 의견을 묵살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사퇴기자회견에서 “개혁과 쇄신에 앞장서온 나를 일부에서 쇄신 대상으로 지목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며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후 홍 전 대표의 측근그룹인 김정권 사무총장과 김기현 대변인, 이범래 대표비서실장도 당직에서 물러났다. 사무총장 직무는 친박계인 이혜훈 제1사무부총장이 대행하고 대변인은 이두아 원내대변인이 병행하게 됐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전격 등판

홍 전 대표 사퇴 이후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진 한나라당의 구원을 위해 끝내 박근혜 전 대표가 조기 등판하게 됐다. 지난 12월19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아모리스홀에서 한나라당 14차 전국위원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비대위원장에 박근혜 전 대표를 추대했다. 그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5년5개월 만에 다시 당권을 거머쥐게 됐다.
박 위원장은 수락연설을 통해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구시대의 폐습을 타파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향후 당 정책과 인적쇄신이 중요 흐름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또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놀라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부가 그동안 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이럴 때일수록 모든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물셀 틈 없는 대비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울려 퍼진 박 위원장의 목소리는 사뭇 비장했다. 한나라당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정하면서 향후 당이 걸어야 가야 할 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지, 국민에게 외면당했는지 참담한 심정“이라며 “당원의 한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그동안 한나라당이 국민이 부여한 책임 다 하지 못했다”면서 향후 비대위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했다.

박 위원장이 제시한 대안들을 살펴보면 서민밀착형 정책들이 특히 도드라졌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으며, 요란한 구호보다 하나라도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그 변화의 시작은 여야 정쟁 때문에 잠자고 있는 민생예산과 법안처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항간에서 떠도는 ‘재창당론’을 의식한 듯 “무늬만 바꿔서 국민의 신뢰를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대신에 소통과 화합의 길을 통해 계층, 세대, 지역, 이념 간의 간극을 좁히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전국위원회는 박 위원장 선임과 당헌개정안에 대한 안건을 의결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김학송 전국위원장과 황우여 원내대표가 인사말을 한 후 바로 표결에 들어갔다. 이 투표결과 전국위원 778명 중 527명은 만장일치 박수로 박 전 대표를 비대위원장에 선출했다. 전체 전국위원 778명의 과반수인 389명 이상이 당헌 개정안에 찬성하면서 박근혜 비대위는 당 운영의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가지게 됐다.

이렇듯 극적으로 출범하게 된 ‘박근헤 체제’는 시작부터 큰 악재를 만나게 됐다. 박 위원장을 선출했던 12월19일 정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졌던 것. 거의 핵폭탄급에 가까운 이 뉴스로 인해 5년5개월 만에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박 위원장의 행보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박 위원장이 지난 2006년 10월 발생한 북한 핵실험으로 이후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지지율 역전을 당한 후 대선 전까지 이를 뒤집지 못한 전력이 있다는 점이다. 박 위원장으로서는 심각한 ‘북한 징크스’를 겪고 있는 셈이다.

김 위원장 사망 정국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까지 ‘박근혜 비대위’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대위 내부에서는 강도 높은 쇄신정책과 서민정책들을 생산하고 있지만, 민심의 이목이 온통 북한에 쏠려 있는 탓에 상대적으로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이틀이 넘도록 사실관계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안보당국의 무능 또한 박 위원장에게는 악재로 작용했다. 통상 국민들이 정권과 여당을 하나로 묶어서 인식한다는 점에서 박 위원장이 제시하는 정책기조 변화와 물갈이 등의 쇄신행보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계파해체 선언 후 야당과의 물밑 조율 박차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한 이후 눈에 띄는 변화로는 계파해체의 가속화를 들 수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대표적인 친이계 모임으로 꼽히는 ‘함께 내일로’가 12월21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이 모임은 친이계 의원 68명이 소속된 대표적인 주류모임으로 지난 4.27재보선까지 강한 결속력을 과시해 왔다. 하지만 당시 선거에서 패배하자 당 주류에서 밀려나는 등 쇠퇴의 길을 걸어왔다. ‘함께 내일로’의 초대 대표를 맡았던 심재철 의원은 “계파의 의미가 없어졌으며 당이 새롭게 변화하는데 일조하는 차원에서 공식 해체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2월20일에는 친박계 모임인 ‘여의도 포럼’ 역시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해체를 선언한 바 있다. 이 같은 계파해체는 박 위원장이 지난 15일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향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돼 열심히 노력해 나가자”며 사실상 계파 해체를 선언한 것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날선 대립각을 세워왔던 양대 계파가 해체수순을 밟음에 따라 한나라당 내 동력은 상대적으로 강해지게 될 전망이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박 비대위 체제가 보여준 행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위원장 사망에 대한 정부의 입장표명과 예산국회 정상화 과정에서 청와대와 원내대표단 간의 긴밀한 물밑조율을 통해 비대위의 존재감을 여실히 보여줬던 것이다. 정부가 김 위원장의 사망 다음날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입장을 표명해 조문 논란에서 비켜간 것도 박 위원장의 입김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여야 원내대표가 극적으로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는 과정에서도 박 비대위원장이 황우여 원내대표와 원활한 소통과 협의를 거친 것으로 파악됐다. 박 위원장이 수락연설에서 강조한 ‘새로운 정치’와 ‘민생행보’가 적절히 실현된 모양새다.

또한 여당 내부에서 반대 입장을 고수해 온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을 표결 처리와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폐기, 유보, 수정 등을 포함하는 내용의 한미 FTA 비준안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는데도 합의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국회 정상화 합의 이후 “내부적으로는 여당이 양보를 많이 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한나라당 내에서는 고무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비대위가 출범한 지 하루 만에 교착 상태에 빠져있던 등원관련 여야 합의가 원만하게 마무리 된 것은 박 위원장의 적극성과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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