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AOL과 최고의 만남, 2009년 최악의 합병으로 마무리

미국의 내로라하는 시사주간지, 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시대의 걸작을 제작하는 영화사, 세계적인 팝스타를 거느리고 있는 음반제작사, 미국의 상업방송국을 능가하는 테이블 영화 채널, 실시간 뉴스 채널…. 일일이 거론하기에도 벅찬 이들 미디어산업을 손에 쥔 채 시장을 좌지우지하며 주름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세계 최대의 ‘미디어제국’ 타임워너다.

주차장 회사와 청소 회사가 만나 미디어제국을 일궈냈다? 그 시작에서는 아무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회사는 손을 잡았고, 다른 회사들을 사들이면서 조금씩 회사의 몸집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우러러보는 제국을 완성했다.

인수합병으로 가치를 키우다

타임워너(Time Warner)는 합병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키워온 회사다. 이러한 이유로 ‘하나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아오기도 했지만 타임워너는 그 조직을 효율적으로 편성해 경쟁에서 살아남았고, 그들의 성을 쌓아올렸다.

1966년 주차장업을 하던 키니파킹(Kinney Parking)과 청소업을 하던 내셔널클렌징(National Cleaning)가 합병해 키니내셔널서비스(Kinney National Services)라는 회사가 탄생했다. 이 회사는 이듬해 DC Comics와 애쉴리 페이머스(Ashley-Famous)를 인수하며 미디어·연예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1969년에는 워너브라더스-세븐아츠(Warner Bros-Seven Arts)도 인수했다. 인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회사는 엘렉트라 레코드(Elektra Records)와 논서치 레코드(Nonesuch Records)를 인수하면서 음반 사업에도 진출하게 되면서 1972년 사명을 워너커뮤니케이션(Warner Communications)으로 변경했다. 이 회사가 바로 지금의 타임워너 모태다.
타임워너는 미국의 종합 미디어 기업으로 잡지 타임과 영화사 워너 브라더스, 워너텔레비전, 뉴스 전문채널인 CNN, HBO 등을 거느리고 있다.

타임+워너 브라더스=타임워너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s.)는 Warner가의 형제들인 Harry, Abe, Jack, Sam이 만든 회사다.
1903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영화 상영하는 일을 하며 사업을 시작한 이들은 1905년 펜실베이니아 뉴캐슬 지역에 캐스케이드 극장을 설립하면서 상영과 배급 쪽의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상영과 배급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이에 1913년 워너 픽처스를 설립해 영화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제작, 배급, 상영 등 영화 산업의 대부분을 담당하게 된 워너 브라더스는 유성영화에도 많은 노력을 쏟아 1926년 처음으로 유성영화를 상영했다. 그러면서 워너 브라더스는 영화 산업의 선두에 서게 됐다.

워너 브라더스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작품을 만드는 영화사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유태인 미망인과 흑인 운전사와의 교분을 다룬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X의 생애를 다룬 <말콤 X>,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비화를 영화적으로 파헤친 <JFK> 등은 워너 브라더스의 색깔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표작들이다.

1922년 Henry Luce와 Britton Haddon에 의해 설립된 타임 社는 그 이듬해부터 잡지 ‘타임(Time Magazine)’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경제주간지인 ‘포춘(Fortune)’을, 1936년에는 사진잡지 ‘라이프(Life)’를, 1954년에는 스포츠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를 차례로 창간했다.
그리고 1989년, 워너 브라더스를 소유한 워너커뮤니케이션스와 타임이 합병하면서 타임워너가 출발했다.
타임워너의 모태인 워너 커뮤니케이션은 1990년 비아콤의 파라마운트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타임을 인수했다. 그리고 1991년 사명을 지금의 타임워너로 변경했다. 1996년에는 테드 터너가 운영하는 TBS(TurnerBroadcasting System)를 인수했다. 이 합병으로 타임워너는 TBS가 보유하고 있던 1950년대 이전의 영화저작권을 인수하며 케이블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처럼 21세기를 겨냥한 첨단 미디어 사업에 뛰어든 타임워너는 전화 회사인 US 웨스트와 합작해 플로리다 주 올랜도 시를 주축으로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쌍방향 케이블 사업인 종합정보통신망(Full Service Network)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생채기 남긴 AOL와의 잘못된 만남

하지만 타임워너의 인수합병이 늘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성공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대표적인 사례가 AOL와의 만남과 결별이다.
닷컴 버블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00년 1월. 타임워너는 AOL을 인수해 ‘AOL 타임워너’를 출범시켰다. 인수금액은 무려 1,819억 달러. 이로서 자산 규모 3,500억 달러의 미디어 그룹이 탄생했다. 두 회사의 만남으로 케이블TV 가입자 수는 2,100만 명, 인터넷 가입자는 2,600명이 확보된 셈. 이는 다시 말해 방송통신 시장의 독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둘의 만남은 전 세계를 들썩이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두 회사는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타임워너와 AOL의 만남은 1999년 한 행사장에서 시작됐다. 1999년 가을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중국 정부 건립 5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제럴드 레빈 전 타임워너 회장과 스티브 케이스 AOL 창업자가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은 합병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뉴욕에서 다시 만나 합병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합병 작업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양측 회사에서도 반대가 거의 없었다. 언론에서도 이들의 만남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월스트리트저널은 합병 발표 직후, 20건 이상의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AOL 스티브 케이스 회장은 “최강의 인터넷 회사와 최고의 미디어 회사 간 결합이 새로운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업의 탄생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을 만큼 두 기업의 만남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화려한 둘의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닷컴 버블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온라인 광고 역시 부진했다. 특히 전화 접속 인터넷 최강자였던 AOL은 하이스피드 인터넷 접속 기술의 발달로 설 자리를 잃어갔다.

무엇보다 두 회사 간의 문화적 차이가 자주 충돌했다. AOL의 인재들이 타임워너 본사 쪽으로 이동하면서 AOL측의 불만이 터져 나왔고, 새로운 식구들을 맞이해야 하는 타임워너도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시 리처드 파슨스 전 타임워너 CEO의 “타임워너 사람들은 새로운 생활에 직면해야 했다. 두 회사는 너무 다른 문화를 갖고 있었고, 우리는 그 차이를 과소평가했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두 회사 간 문화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운 숙제였다.
그리고 결국 9년 후 이들은 갈라섰다. 타임워너는 자사그룹에서 AOL을 분리시켰고, AOL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타임워너와 분리될 당시 AOL의 시가총액은 25억 달러에 불과했다.

AOL 분사 결정 “최선의 결론이다”

2009년 5월28일 타임워너는 뉴욕에서 열린 타임워너 연간 주주총회를 열고 인터넷 부문인 AOL을 분리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며, 분사 작업을 그 해 말까지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프 뷰크스 회장은 “타임워너와 AOL이 내린 최선의 결론이다. 앞으로 주력 분야인 콘텐츠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의 이 둘의 결별에 대해 전통 매체와 신종 매체 간의 합병이 생각만큼의 시너의 효과를 내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았다. 특히 AOL의 부진이 타임워너까지 영향이 미치자 더 악화되기 전에 AOL의 분사를 결정했다는 분위기였다.

2002년만 해도 2,670만 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던 AOL은 2008년 4분기 고객수가 630만 명으로 줄어들었으며, 2009년 1분기 영업이익 역시 전년 대비 47% 감소해 타임워너가 칼을 빼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타임워너는 그해 12월9일 AOL을 분사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21세기 최악의 인수합병으로 꼽히는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에 제리 레빈 전 타임워너 CEO는 2010년 1월 미국의 모 방송에 출연해 “금세기 최악의 합병은 내가 주도했으며, 실패로 인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타임워너 직원들, 변호사, 스티브 케이스에게는 책임이 없다”면서 합병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전했다.

당시 타임워너 CEO였던 그는 2000년 AOL에 주식을 팔고 합병기업 수장에 올랐지만 실적 부진으로 2002년 5월 자리를 내줬다.
한편,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주인공은 CNN의 창업자로 합병 회사의 최대 주주였던 테드 터너로 알려졌다. 그는 뉴욕타임즈를 통해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은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 흘려보내야 한다. 이 합병은 미국에서 발생한 가장 큰 재앙들 중 하나였으며, 나는 80억 달러를 잃었다” 밝혔다.

해외사업으로 미래 수익원 창출

최근 타임워너는 해외로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그룹 전체 매출의 1/4 정도가 해외사업에서 창출할 만큼 미래 수익원을 해외사업을 통해 창출하고 있다.
130여 개의 잡지를 발간하고 있는 타임사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첫 번째, 멕시코에서는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특히 1946년에 출판을 시작한 타임 아시아는 약 110만 명의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잡지뿐 아니라 방송 계열의 CNN과 카툰네트워크(CN)도 활발하게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타임워너는 이를 기반으로 올해 2분기 순익이 케이블TV와 영화, 잡지 수익 향상 덕분에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다. 2분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5억 6,200만 달러(주당 49센트)에서 6억 3,800만 달러(주당 59센트)로 증가했으며, 일부 비용을 제외한 경상이익은 전망치 주당 56센트를 상회한 60센트를 기록했다. 매출은 10% 상승한 70.3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 68.2억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3분기에도 타임워너는 웃었다. 이번에는 ‘해리포터’ 최신작이 효자 노릇을 했다. 3분기 실적이 시장 전망치를 상회하는 성과를 냈다.

타임워너는 11월2일(현지시간) “일부 비용을 제외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주당 62센트에서 79센트로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75센트를 예상한 전문가의 전망치를 상회하는 것으로, 순익은 전년 동기 5억 2,200만 달러(주당 46센트)에서 57% 오른 8억 2,200만 달러(주당 78센트)를 기록했다. 매출은 11% 증가한 70억 7,000만 달러를 나타냈다. 이는 69억  7,000만 달러를 예상한 전망치를 웃도는 수치다.
타임워너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미디어제국이다. 잘못된 만남으로 위기를 자초하기도 했으나 더 늦기 전에 가지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다시 일어섰다. 시련을 이겨낸 타임워너는 더욱 굳건하게 시대의 바람에 응수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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