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고에 서민수심 가득한데 여기저기 폭력만 난무

국회가 난리법석이다. 집권여당이 ‘법률’도 아닌 ‘국가 간 조약’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는가 싶더니, 이를 반대한다는 민주노동당 김성동 의원은 국회 본회의장 안에서 최루탄을 터트리며 소동을 피웠다. 우여곡절 끝에 한미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대통령의 서명까지 끝난 상황에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장외투쟁을 선언한 채 국회 밖을 떠돌고 있다. 새해 예산안 등 민생현안이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이는 명백한 배임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대한민국은 엄연한 의회민주주의를 지켜왔다. 하지만 이번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사태로 인해 의회민주주의가 통째로 날아갈 판이다. 우선 칼을 먼저 든 건 여당이 맞다. 하지만 그 이후에 보여준 야당들의 태도를 보면 결코 잘했다고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비록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다고는 하나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당론에 따라 의제를 심사하고 통과하는 일은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는 한미FTA의 찬반 여부를 떠나 비준안을 통과시키는 과정과 절차가 그렇다는 이야기다.

의석수가 적은 야당입장에서 보자면 그러한 다수당의 행태가 일종의 폭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의석수 균형을 그렇게 맞춰준 것은 국민임에 틀림없다. 국회의원은 투표에 의해 국민이 뽑는 것이고, 그 결과가 곧 민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한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해당 지역구를 대표하는 막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야당이 추구하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수결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는 현행 법체계에 있어서 비판을 할 수 있어도 폭력을 휘두르거나 배임을 해서는 안 된다. 다수당이 내린 결정에 대한 판단은 순전히 국민들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리고, 장외투쟁을 선언한 채 산적해 있는 민생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는 현 상황은 분명히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야당은 즉시 국회로 돌아와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할 것이다. 설사 여당이 틀리고, 야당이 맞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 국가에 의회민주주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국회에서 논의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이다.

여당을 두둔하려는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현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면 여당이나 야당이 똑같다. 준엄한 국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다수당이라면 소수당에 대한 배려와 설득에 보다 애썼어야 했다. 그들의 표현대로 “한미FTA 비준안 통과가 국익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면 성심을 다해 야당을 만나 설득해냈어야 했다. 동의를 받아내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야당이 국회를 뛰쳐나가는 파국은 막았어야 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 의회에서도 4년 넘게 검토하고 논의한 바 있는 비준안을 왜 그토록 빠르게 처리해야만 했는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니 한미FTA를 반대하는 측에서 미국의 경제식민가 된다느니, 맹장수술비가 900만 원으로 뛴다느니 하는 괴담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승만 정부 이후 우리는 암울하고 엄혹한 시대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적어도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계엄령이 함부로 선포되고 국회가 해산되는 사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민주주의를 위해 끝없는 눈물과 피 그리고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런데 논의와 의결권이 보장된 국회에서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이성을 잃은 채 폭력을 휘두른다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결국 후퇴하고 말 것이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치러질 예정이다. 국민들은 지금 이 상황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며, 그 결과는 선거의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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